Still life - 소유의 욕망

by 박재은

옛 그림을 살펴 보며 공부하다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나 분류에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궁금증이 일어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행사를 기념하는 기념화에서 왕의 의자는 왜 비어 있는지, 옛 그림에서 서양화의 정물화에 해당하는 그림은 화조화인지, 책가도인지... 등이다. 두 의문 사항 모두 sns로 궁금증을 해결하였다. 미술사학자로 활동중 이신 정병모 교수님께 sns로 정중히 궁금증을 여쭤 보았다. 첫 번째, 행사를 기념하는 그림에서 왕의 의자가 비어 있는 것은 왕이 지엄하기 때문에 왕의 얼굴은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옛 그림에서 정물화에 해당한 것은 화조화가 아니라 책가도1) 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조화는 정지해 있는 사물이 아니고 생동하는 사물을 포착한 것이라 정물화에 해당하지 않는다. 책가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순회전을 가지는 등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사람 들이 우리 옛 그림 중 특히 책거리 그림에 매료되는 이유도 자못 궁금하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책의 힘, 문자의 힘은 인류 문명사를 이룩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니, 그 그림만 봐도 뿌듯한 무엇인가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 같다. 책거리 그림을 보면, 책 뿐만 아니라 고동기물들이 눈에 들어 온다. 예컨대 명청대의 소품문小品文을 즐긴 남공철은 평소 손님이 오면 향을 사르면서 경전과 역사를 토론하거나, 고금의 훌륭한 서화·동옥銅玉·정이를 늘어놓고 품평을 즐겼다.2) 책거리 그림은 옛 선비들의 고상한 사치 생활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기물들이 놓여 있다. 정조가 책가도 병풍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와 김홍도가 책거리 그림에도 능했다는 이야기는 제법 알려져 있다. 거칠게 말해서 책거리는 사물에 애착하는 그림이다. 옛 그림을 다수 접했지만 이렇게 소유욕이 왕성한 그림은 책거리 외에 찾아 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선비답지 않은 왕성한 소유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강세황3)은 금석에 새긴 그림, 옛 청동 그릇 등 박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팔물지》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팔물지》는 도서, 괴석 등에 관한 품평서이다. 고동기물을 단순한 완상품이 아닌 탐구 대상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4)

시대를 조금 현대로 이동해 보자. 지금의 정물화에 기본적인 모델이 되고 있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 아마 박득순5)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득순의 <꽃과 정물>은 1950년대의 그림으로 보기에는 상류계층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과실은 살이 쪄 입에 물면 금방이라도 과즙이 터져 나올 듯하다. 백자로 보이는 꽃병도 가격이 비싸 보인다. 1959년의 그림으로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여유가 있는 가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박득순의 정물화는 어떤 안정감이 화면에 흐른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소유물을 볼 때 인간이 느끼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 남보다 귀한 것, 남보다 부유한 것을 소유할 때 우리는 심리적인 충만함을 잠시라도 맛보니까 말이다.

이응록.jpg 이응록 <책가도>, 종이에 채색, 150*380cm, 개인

동시대 미술에서 정물화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포기한 듯하다. 김기라6)의 <캔디가 있는 현대 정물화>라는 그림에 해당하는 말이다. KFC, BURGUR KING 등 패스트 푸드를 먹고 난 지저분한 식탁의 풍경이다. 조금의 빈 공간도 찾기 어렵게 사물들은 겹겹이 포개어 있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김기라의 정물은 어떤 촉박함?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하였고, 느린 것을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문화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빨리 만들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 푸드를 찾기 시작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지금보다 나은 미래...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동시대의 풍경이다.

박득순.jpg 박득순, <꽃과 정물>, 1959, 캔버스에 유채, 60.6*49.5cm


김기라.jpg 김기라(1974-), <캔디가 있는 현대 정물화> 캔버스에 유채, 84*149cm, 2009, 개인소장


1) 책가도 -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그림. 18세기 후반 정조 재위 시에 궁중회화로 유행하여 19세기 이후 민화로 확산되었다.

2) 송희경,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선비정신, 조선회화로 보다』, 태학사, p. 244.

3) 강세황 -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평론가. 그림제작과 화평(畵評)활동을 주로 했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4) 전개서, p. 245. 참조.

5) 박득순 - 본관은 영해(寧海). 호는 소성(素城)·소리(素里). 함경남도 문천 출신.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하다가 1934년 일본 도쿄(東京)의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6) 김기라 – 경원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환경조각과를 졸업한 김기라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 현대이론 디플로마 과정과 동대학원 비주얼 아트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출처 - 「코리안 랩소디 –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전시도록, p. 162.

keyword
이전 19화<포도도>와 극사실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