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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Apr 13. 2021

개미 이런 거 먹기 싫어요

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딸아이와 조카는 우리 집에서 놀이를 자주 한다. 녀석들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걸 본 적은 별로 없다. 녀석들은 아직도 놀이를 참 좋아한다. 녀석들이 놀이는 하는 것을 엿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딸아이가 언니라 놀이를 주도한다. 놀이를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훈계하거나 화냈던 것 등을 놀이의 형태로 살짝 바꿔 놀기에 열중한다. 몇 년 전 딸아이가 좀 더 어렸을 때는 가끔 상담소를 오픈했다며 나를 초대해 놀았다. 내 고민을 들어준다며 놀이에 참여를 유도하는 딸아이의 모습은 평소 나를 돌아보게 했다. 고민이 있으면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 상의하는 나의 모습을 딸아이는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평소 어른의 모습, 특히 엄마의 모습을 잘 담아두었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행위인 놀이에 녹여낸다. 이것은 카니발 축제처럼, 섬뜩하고, 공포스럽기도 한 미지의 세계인 어른들의 이야기를 약자인 아이들의 입장에서 살풀이하듯 승화하는 과정이다. 이토록 건전하게 살풀이를 하는 집단이 또 있던가! 누군가에게 패악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과 다른, 약자의 동심의 살풀이는 꿋꿋하며 슬프게도 즐겁고 해학적이다. 딸아이와 조카가 자주 멜로디를 삼아 외치는 문장이 있다. "개미 이런 거 먹기 싫어요.!" 종종 놀이할 때 둘이서 동시에 외친다. "개미 이런 거 먹기 싫어요!"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 먹기 싫은걸 몸에 좋다고 권유하는 어른들을 향한 일침으로 짐작이 된다. 자신들의 생각인데, 살짝 개미를 가져다 쓴다. 개미처럼 연약한 동물에 자신들을 은유하는 영리함이 감지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웹툰은 주로 공포이야기다. 좀 더 어렸을 때부터 공포물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조금은 신기해 보였다. 치과에 다녀온 아이가 한동안 이빨 그림만 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치과는 아이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런 공포를 적극적으로 상기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빨 그림을 그리는 행위이다. 어린이와 다르게 우리는 어떤가. 일상의 귀찮음, 성가심, 화, 공포, 슬픔... 모두 회피하고 있지 않은가..


점심으로 비빔면을 먹고 싶다고 어제부터 말하던 딸아이가 비빔면을 해주자 외친다. "개미 이런 거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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