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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May 20. 2021

아이, 어른, 카페

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든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딸아이를 낳고 한 3년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경우에 따라 산후 우울증이 오기도 하지만 내 경우엔 산후에 많이 나온다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많이 나온 것 같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멋지게 성공한 것이 없기에 출산이라는 경험은 나에게 일종의 성공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모두 다 아이를 예뻐하고 환영했다. 너무 예뻐서 체중이 꽤 나가는 아이를 5살까지 번쩍 들어 안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가고부터 아이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이 끝나면, 꼭 문구점에 가서 자신이 사고 싶은걸 사거나, 먹고 싶은걸 졸랐다. 나도 미숙해서 잘 참다가 아이에게 막 퍼부었다. 갑자기 화가 나면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기 일쑤였고, 아이는 움츠러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세상에서 한 사람만 꼽으라면 딸아이인데... 내가 왜 이러지.. 좋은 호르몬도 3년쯤 나오다 고갈되는 모양이었다.


요즘은 딸아이에게 화를 덜 낸다. 아이도 많이 커서 성숙했고, 나도 마흔을 넘어 조금은 유들유들해졌지 때문이다. 그래도 여러 가지 스트레스, 컨디션 난조인 날이면 또 아이에게 불똥이 튄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아이와 또 티격태격했다. 그것도 동네에서..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동네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내가 이런 어른이 되려고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아이와 자주 안 가본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딸아이가 심부름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엄마는 어린 시절 엉망인 어른을 너무 많이 봤어.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나는 크면 절대 저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 다짐했어. 그런데, 엄마도 별 수 없이 아이에게 화나 내는 어른이 되고 만 거야. 그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아이고, 엄마도 일이 많지 뭐. 집안일에, 아픈 할머니 산책도 시켜드려야 하고, 또 글도 쓰지, 또 이동식 선생님 책도 읽어야 하지, 찌뿌둥한 아빠도 달래야 되지..." 이동식 선생님은 정신의학자인데, 인연이 되어 그분의 책을 끼고 살았다. 언젠가 무슨 유언처럼 아이에게 이동식 선생님 책은 중학생이 되면 꼭 읽어보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거다.

한심했다. 다 큰 어른이 카페에서 어린 딸에게 이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징징대었고, 아이는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카페에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주문해서 2층으로 가져와 주었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며 아이에게 위로받던 그날,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받아주며, 우는 엄마의 사진도 찍어 주고, 눈물도 닦아 주었다.


지금은 내가 너의 손발이지만, 그 작은 손이 미래에 나의 손발이 되어 주겠구나... 미안하다. 못난 어른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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