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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Jun 21. 2021

밤 산책

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감자볶음을 세 번 했다. 음식을 잘 못하는데, 감자볶음은 잘하는지 금방 떨어졌다. 하필 날도 더워 더 이상 감자볶음을 만들기 싫었는데, 아이가 남편 감자볶음에 손을 댔다. 기분 나쁘지 않게 타일렀다. 아빠 꺼라 남겨두자고... 아이가 서운한 기색이었다. 좀 덜어주고 달랬는데, 밤 산책을 졸랐다. 두드러기가 이틀 전부터 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해서 꺼려졌다. 두드러기는 피곤하면 더 기승을 부렸다. 꾹 참고, 아이와 나갔다.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를 돌까?" "어디를 돌 수 있어?"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무엇을 할래?라고 물으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묻고, 무엇을 살래? 하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아이가 왜 이리 눈치꾸러기가 됐을까? 아이가 무엇을 사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다이소를 갔다. 물건을 고르고 밤 산책을 잠깐 했다. 동네에 포토존이 있는데 아이를 찍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웬 아저씨가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본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도 아주 빤히.. 아저씨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 아저씨가 엷게 미소 짓고 있었다. 취기가 올랐나? 자세히 보니 추태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미소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호기심 어린 인자한 미소였다. 아저씨의 차림으로 보아 부유하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여유는 어디서 나올까?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카페에 가서 차근히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카페에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또 맘속에서 트러블이 일어나고 있었다. "뭘 먹을래?" "뭘 먹을 수 있어?" "엄마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걸 고를까? 망고 바나나 라테 어때?" "라테는 커피 아냐?" "라테는 우유가 들어서 라테 같아. 엄마도 잘은 모르지만..." 아이가 똥이 마렵다고 했다. "메뉴는 뭐?" " 초코 셰이크"  이런.. 또 얼음 잔뜩이네.. 망고 바나나가 싫었던 게로 군.. 메뉴가 나올 때까지 한참 똥을 누던 딸은 셰이크를 맛나게 먹었다. 나는 엄마가 아픈 게 눈치가 보이냐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가 내가 컨디션이 오락가락하니 눈치를 많이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마흔이 넘으면 잘 아프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셰이크를 질질 흘렸다. 마치 엄마 말이 듣기 싫은 듯.. 짜증이 밀려왔다. 집에 있는 사람이 종일 에너지를 어디 썼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남편이 회사에 에너지를 다 뺏기고 오는 것이 늘 화가 났는데, 내 꼴이 그랬다. 아침부터 쓸데없이 쫓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들을 듣고, 내 딴엔 보살핌을 한다고 한 게, 정작 내 딸에게는 늘 아픈 엄마, 화난 엄마였다. 이런 나 자신이 화가 났다. 왜 이모양인지.. 한다고 해도 늘 왜 이 모양인지.. 아이를 키우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다. 한 아이를 담기에도 부족한 내 세계.. 좁다. 좁아도 너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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