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집 근처 테마파크에서 즐거웠다. 테마파크는 다소 어설픈 구성이지만, 그것이 또 웃음을 유발하는 포근한 공간으로 환원된다. 박물관, 체험관, 영상관까지 갖추어야 할 구색을 맞추고 있고, 체험 선생님들도 정성껏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벌써 사춘기인지... 테마파크에 들어서는데, 내가 한 말부터 아이가 예민해졌다. " 하하, 저 조그만 아이들 봐. 우리 애는 다 컸네, " 아이는 작은아이들이 노는 공간에 자기는 다 큰 아이라며 시작부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입구에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데, 토끼들은 잠자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 마음을 풀어주려, 이것저것 체험도 하고, 떡볶이며, 과자도 사 먹고 다시 즐거워졌다. 난타 공연까지 내가 더 신이 나 "오늘 참 재밌다. 그렇지?"를 연발했다. 아이는 이상하게 오늘따라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싶어 했다. 내가 보기엔 토끼들이 많은 먹이에 배가 불러서 잘 안 먹는 것 같은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잘 놀다가 집에 갈 때 되어서 자기 당근만 토끼가 안 먹었다며 울컥했다. 나는 속으로 '안 먹는 당근을 왜 굳이 주려고 하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참았다. "그놈의 토끼들, 왜 그래?"라고 편도 들어주었지만,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밀치고 들어가 버렸다. 오늘 재밌어하던 남편도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었다. 하루 종일 재미있던 나는 갑자기 황당했다. 그렇지만, 차분히, 남편을 달랬다. " 자기야, 애라서 그래. 그냥 먹이 안 주면 되는데.. 어른하고 달라서 자기 하고 싶은 거 안되면 그래요." 남편은 짧게 "알았어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녀석은 잔다며 방에 들어갔다. 오늘은 맥주 한잔 하고 싶은데,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이상하게, 하루 종일 다 좋을 순 없다. 얄궂은 운은 한 번씩 회전하며 심술을 부린다. 아!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그냥 기분 좋으면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