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은 Jun 11. 2021

비움 - 채움의 순간

나의 애정하는 생활

"진관사 언제 갈까?"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에 절에 다녀오고 싶어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난 사이다. 친구랑 대화하다 보니, 통하는 것이 많았는데, 그 중에 취향이 잘 맞았다. 종교에 대한 것도 통해서 절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내가 톡으로 구체적인 날짜를 물어보니, 친구가 날짜를 앞당겨 어제 다녀오게 된 것이다. 진관사 주변은 한옥마을이 있었다. 친구는 주민들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했다. 친구는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절에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둘 다 죽음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외항선을 타시고 일하시다 배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객사를 하신 할아버지를 외국인들이 장례를 지내주고 시신이 한국으로 도착했을 때 관에 할아버지 가슴에 십자가를 묻어두었더란다. 할머니는 불교신자라 다시 장례를 치를 때 십자가를 꺼내어 버리셨다. 그 후에 할머니의 죄의식이 그랬는지,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시며, 자신이 갈 곳에 못 간다는 말씀을 하셨단다. 할머니는 곧 십자가를 사서 할아버지 관에 넣어드렸다고 한다. 절을 들어서면서 하게 된 이야기가 퍽이나 진지했다. 


진관사에 도착하니 불경이 들려왔다. 절에 법당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한 곳에선 제사를 모시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랑 친구는 밖에서 목례를 하며 기도를 드렸다. 절을 찾으면, 많은 것을 빌고 올 것 같았는데, 의외로 생각이 없어졌다. 머릿속이 비워지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짧게, 가족 건강을 빌고, 가족의 얼굴들을 떠올려보았다. 절에서 나는 특유의 향내음이 좋았다. "어릴 때, 할머니 따라 절에 왔을 때 먹었던 절밥이 생각나. 맛이 좋았어." 친구도 어느 절에 가면, 오는 사람들에게 국수를 대접해 주는데,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카페로 갔다. 북한산 제빵소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평일이라 비교적 한산했다. 우리는 조금은 구석진 곳에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친구가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여는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아이 이야기할 때는 저나 나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돌아오면서 허기가 질 정도로 배고픔을 느꼈다. "닭개장이 좋아? 추어탕이 좋아?" "추어탕 먹자." 추어탕을 먹는데, 그 뜨끈함이 위장을 편하게 해 주었다. 날은 더워서 땀이 날 정도인데, 뜨거운 것이 좋았다. 잘못하다가 얼큰하게 "크" 하고 먹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어제 하루는 신기했다. 최근 친해진 친구와 즉흥적으로 함께한 하루. 지나간 시간을 원망과 아쉬움으로 뒤돌아 보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던 특별한 하루!


이전 17화 물건 욕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