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날의 고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기억은 잘 휘발되어 버리고, 나쁜 기억은 각인되어 몸에 박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여름에 안 좋은 일이 많았다. 그것을 최근에 알았는데, 유독 여름에 몸이 잘 아프고, 더위를 잘 타서 아는 의사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여름에 안 좋은 일이 많았냐고 물으셨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버지는 여행이나 레저를 일찍이 즐기는 사람이었다. 여름날이 되면,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장흥 수영장이나 계곡에 데려가셨다. 멀미를 잘하는 나는 곤역이였다. 가는 내내 멀미에 시달렸고, 못 참고 토를 하면,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도 없이 아버지 둘이서 딸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일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을듯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별로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는데, 아버지 좋아하는 곳을 더운 여름날마다 데리고 다녔으니, 나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7살쯤 되었던 것 같다. 수영장에 갔는데, 공을 잡느라 그랬는지, 수영장에 빠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척 괴롭고 무서웠다. 다행히 아버지가 예의 주시하고 있던 터라 나를 건져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놀다가 집으로 왔던 것 같다.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여름에 산에 데려갔다가 팔이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팔을 건드리면 자지러지게 울어서 병원에 가서 팔을 붙였다고 무용담처럼 아버지는 이야기하셨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화가 난다. 아니, 본인 좋아하시는걸 왜 굳이, 어린 딸을 데려가서?
얼마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 가서 아팠다. 가기 전부터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멀미도 잘하고, 여름에 어디 놀러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제주도의 여름 볕은 더욱 따가웠다. 기력이 소진되어 호텔방에서만 지내며, 소화가 잘되는 쌀국수만 먹다 왔다. 남편과 아이는 많이 아쉬워했다. 남편은 농담으로 우리가 제주도에 다녀온 것 맞아? 라며, 아쉬움을 은근히 표시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제주도 안 가면 안돼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올여름은 코로나로 더욱 침체된 기운이 감돈다. 청량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용기를 내어 안 하던 요가를 시작했다. 아버지 산악 매트를 빌려다가 깔아놓고 23분짜리 초보 요가에 도전했다. 동영상을 통해 들려오는 요가 선생님의 상냥하고 차분한 음성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못해도 괜찮아요. 더 안 내려가도 괜찮아요."라는 말이 꽤 위안이 된다. 23분 요가를 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그러고 나서, 믹스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운다. 그렇게 먹는 커피는 정말 맛있다. 확실한 기분전환! 어디 가지 않아도 즐길수 있는 휴식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