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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Nov 11. 2021

선비 - 한가로움의 대명사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옛 그림을 공부하다 보면, 유독 선비라는 존재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갖게 된다. 물론, 옛 그림이 모두 선비들의 세계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민화에서처럼 이름 없는 화가들의 눈부신 활약을 볼 수 있는 옛 그림도 있다. 동시대에서는 이러한 민화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더욱 주목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그림과 관련된 서적들에 유독 많이 검색되는 키워드는 선비이다. 또한 한가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선비와 한가로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한가로움을 이야기하자면, 근현대사 인물 이태준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에게 이태준의 <<무서록>>은 책 속에서 책을 만난 경우였다. 아끼는 책에서 이태준의 <<무서록>>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이 좋아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그의 책 <<무서록>>에 한가로움이 등장하는 구절을 한번 보자.


 아직 젊은 나이라 차라리 앞으로 바랄 일이기도 하지만 저녁상에서 물러나면 석간 한 페이지를 못다 살피고 베개를 이끌게 되니, 이 얼마나 '한閑'에 주린 생활인가!

  한불매閑不寐(한가해서 잠을 이루지 못함)란 차라리 청복淸福의 하나 이리라.


이태준의 <<무서록>>에  <난蘭>이란 작품에 실린 글귀이다. 이태준은 수필가로서 필력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미의식에도 밝은 사람이었다. <<무서록>>을 읽노라면, 그의 혜안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한(閑)이라든가, 장한(長閑) 같은 단어를 언급한다. 이것들은 언뜻 들으면, 한가운 여유쯤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지만, 조선의 미의식에 대해 조금씩 다가간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은 들어본 단어들이다. 특히 장한은 근원 김용준 1)이 조선의 아름다움의 하나로 꼽고 있는 요소이기도하다. 좀 쉽게 풀어 말하자면, 우리가 옛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은 여유와 한가로움이다. 이런 여유와 한가로움은 현대인이 바쁜 일상 속에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 한잔 하는 여유와 조금은 다른 측면이 있다. 옛 그림을 관통하는 여유는 이런 잠시 잠깐의 촉박함을 뒤로한 휴식이 아니라 유구하게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불변의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옛 그림을 볼 때 마음이 위안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옛 그림 자체에 여유로운 기운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특히, 탈속적 삶을 살다 간 은일 처사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세속을 초탈한 삶의 여유는 현대인이 느낄 수는 없는 시대적인 삶의 희열이기도 한 것이다.

이경윤 2)의 <고사탁족도> 역시 탈속한 선비의 한가로움이 반영된 그림이다. 탁족도는 냇가에 발을 담그는 그림을 말한다. 은일 처사가 등장하는 그림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장면이다. 선비는 왜 발을 씻을까? 닦아내도 닦아내도 더러워지는 세속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수양을 강조했는데, 은일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은둔한 선비에게도 세속에 물든 마음이 있으려나? 저렇게 깨끗이 닦아 내다 보면, 신선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 근원 김용준 - 1920년 4월 경성 중앙고 등보 통학교에 입학, 표현파를 추구하는 유학생들의 모임인 백 치사(百痴社)를 조직하기도 했다. 여기서 소설가 이태준()을 만나 후에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태준의 수필에 근원의 장한이 등장하는 연유를 근원의 연보를 보고 알게 되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2) 이경윤 - 1545년 6월 10일 청성군 이걸과 여산 송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성종과 후궁 숙의 홍 씨 사이에서 4남으로 태어난 익양군 이 회(1488-1552)이다.

    전 이경윤, <고사 탁족도>, 16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27.9*19.4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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