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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Oct 12. 2021

한가로운 오후 - 낮잠의 즐거움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얼마 전 낮에 몹시도 졸음이 쏟아졌다. 식체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몰려드는 잠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내리 3시간을 잤다. 어찌나 달게 잤는지, 깨고 나니 개운했다. 그렇게 집중해서 자본적이 최근 들어 없을 정도로 꿀잠을 잤다. 사실, 한가롭게 낮잠에 빠지는 시간은 현대인보다는 옛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선물이다.

여기, 소나무 아래 바위 위에 기대어 낮잠에 빠진 선비가 있다. 제법 나이가 들어, 인생의 조급함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선비가 자는 것인지, 명상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선비의 낮잠은 왠지 범상치 않다. 어쨌든, 자연 속에서 바위에 기대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이 그림을 그린이는 윤덕희이다. 윤덕희는 윤두서의 맏아들이다. 아버지 윤두서의 영향을 받았고, 말년에는 시를 쓰는데 몰두했다. 윤덕희의 <송하오수도>를 보니, 이 기운이 영험한 도인의 자세 또한 특이하다. 가부좌 틀고 자는 사람도 있는지...

    이재관, <오수도午睡圖>,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22*56cm, 삼성미술관 리움.


 옛 그림을 보면서 현대와는 다른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옛 그림 속 시간은 유유히 흐르며, 재촉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급하지 않고, 채근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현대를 살면서 옛사람들이 제일 부러운 것 중에 하나가 그들의 한가로움과 자연이다. 우리가 옛 그림을 보고,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찾는 것은 아마 우리의 시간이 너무도 급격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옛사람들에게 그 시간의 주인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부러운 일이다. 물론 인간사 주종관계에서 그러한 특혜를 누린 이들은 따로 있다. 우리 옛 그림 속에서 유독 한가로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은일처사이다.


 '천지의 사이에 다시 어떠한 즐거움이 이것을(혼자 노는 즐거움을) 대신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 송나라 문인 사마광(1019-1086)이 지은 독락원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옛사람 중 은일처사들은 혼자 노는 지극한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남들과 어울려 흥취를 느끼며 진탕 놀 때도 즐거움을 느끼지만, 지극한 즐거움은 혼자 놀 때 느끼기도 하는 법이다. 무언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으로 집중할 때, 한가로운 오후 낮잠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에, 음악과 커피를 즐기며 산책이나 책을 즐길 때, 우리는 지극한 즐거움에 접속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말이다.

 

이왕에 낮잠 이야기를 하게 됐으니, 이재관의 <오수도>를 한번 보자. 이 역시 낮잠 자는 선비를 묘사한 그림이다. 여기서 선비의 고상하고 여유 있는 시간이 가능한 것은 동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자는 선비의 시중을 드느라 차를 끓이고 있다. 차 앞에서 조심조심 부채질을 해가며, 귀중한 선비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는 동자의 배려가 있기에 선비의 단잠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동자가 조금이라도 조심성이 없는 성격이라면, 선비가 낮잠을 깨는 일은 빈번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휴식과 여유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선비의 고상한 성격은 그림에 그려진 두 마리 학이 말해준다. 학을 좋아하는 고상한 선비의 단잠과 한가로움을 느껴보고 싶은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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