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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Sep 12. 2021

풍류와 선비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여기 한 선비가 있다. 소색의 삼베옷을 입고 방건을 쓰고 당비파를 켜고 있다. 선비 주변에는 붓과 벼루, 칼, 생황, 호리병, 파초, 중국 골동품 등이 선비를 둘러싸고 있다. 선비의 인상을 보니, 얌전하고, 곧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음악을 즐기려면, 들어주는 청중이 있어야 할 텐데 혼자 고고히 음악을 즐기는 것 보니, 선비는 소심한 성격인 듯싶다. 그러나 선비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음악을 듣고 익히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선비는 성정이 맑고 세속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가만히 들어앉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매만지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선비는 왜 들어앉아 있을까? 세속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겁이 많은 측면도 있고, 기질이 고와 남과 다투고 쟁취하는 삶에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사에는 세(勢)가 필요한데, 은일은 세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세를 죽이는 행위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세가 필요할 것 같지만, 흥했던 세는 때때로 자신을 치는 화살로 돌아오기도 해 선비는 본능적으로 생명보존을 위해 한가로운 은일을 택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통한 즐거움은 필수인 셈이다.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의 저자 한흥섭은 우리나라 국악의 힘을 풍류문화에서 찾고 있다. 풍류에 대한 것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 37년 조(條)에 기록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통일신라 말엽 인물인 최치원(857~?)의 <난랑비서>의 일부분으로 인용된 것이다. 한흥섭의 주장대로 간단히 풍류에 대해 정리하자면, 신라시대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아름다운 여인을 뽑아 사람을 모은 것이 풍류의 기원이며,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뽑아 음악을 통한 도에 이르게 된 것이 풍류의 뿌리라는 주장이다. 풍류를 정의하기란, 기록도 현존하는 것이 별로 없어,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긍정적인 기운을 모으는데 힘써, 음악으로 도를 체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풍류에 필요한 것은, 음악과 아름다운 여인, 술, 좋은 경치, 구경꾼 등이 해당될 것이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가 조금은 소심한 선비의 풍류라면, 신윤복의 풍류는 좀 더 흥취가 오를 데로 오른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전에 들썩임, 설렘 등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싶다. 신윤복은 당시 금기시되었던 여인들의 풍속을 적극적으로 끌어 들어 화폭에 옮긴 화가이다. 신윤복이 이토록 양반들의 풍류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그 자신이 이러한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풍류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이 모두 모여 있다. 기생과 양반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는 풍류한마당이다. 그런데, 유독 눈이 가는 존재가 있다. 작은 소반에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오는 여인이다. 기생들보다 가체가 작은 것,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봐서 기생보다 계급이 낮은 여인이다. 여인은 무슨 마음일까? 이런 역할이라도 그 자리에 끼고 싶은 순진한 마음을 가졌을까? 어디 그 여인도 끼어 주라고 말하고 싶다. 풍류를 즐기는데, 계급이 무슨 상관일까?

신윤복 <풍속도첩 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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