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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Jan 20. 2022

물고기와 즐거움 -<어초문답도>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처음으로 작은 통통배를 타 본 적이 있다. 학생 때 제주도를 갔는데, 그때, 내가 배멀미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난감했다. 남학생들도 많은데, 구토를 해서 고기밥을 주고 말았다. 그때 예비역 과 선배 하나가 “고기밥 잘 준다.”라고 덕담까지 하는 걸 듣고, 눈물 콧물 빼며 배멀미를 했다. 그리고 곧, 언제 그랬는지, 우리는 고기를 잡는 체험을 해야 했다. 아무도 못 잡는데, 내 줄에 줄줄이 작은 고기들이 따라 올라왔다. 나는 고기를 잡겠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때 무슨 생각이 있었겠나. 그런데 신기하게, 욕심을 잔뜩 부린 사람들에게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여기 어부와 나무꾼이 대화하고 있다. 그림을 보니, 고기를 두 마리 들고 있는 이가 어부이다. 나무꾼과 어부의 대화 장면을 그린 <어초문답도>이다. 어부는 신발이 없고 소매가 가벼운 걸로 보아 추운 날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그림을 고사인물도라 하는데, 간단히 말해, 역사 속, 문학작품 내용 속 인물이 모티브가 되어 그린 그림을 고사인물도라 한다. 고사인물도에는 한가로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들은 때로는 여유롭게 가야금을 타기도 하고, 맑은 물에 발을 씻기도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이명욱이다. 그는 숙종 때 도화서 출신으로 중국색이 짙은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상당히 잘 그린 그림인데,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의복을 그린 선의 외곽선이 다른 배경이나 부분에 비해 너무 짙어서 그림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식의 외곽선은 옛 그림에는 별로 드문 경우이다. 지금까지 의복에 외곽선을 이렇게 그린 그림을 두 점 보았는데, <어초문답도>와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이다. 다른 부분은 제외하고 의복 부분에 외곽선을 이렇게 잡은 이유가 몹시 궁금하던 차에 정병모 선생님께서 답을 주셨다, 정두서미묘법으로 신선도에 많이 쓰이는 기법으로, 첫머리에 정처럼 꼭찍어 쥐꼬리처럼 삐치는 기법이다,


 아무튼, 고사인물도에는 유독 한가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가로운 사람! 하면 대표적인 사람이 북송 때 인물 소옹이다. 소옹은 초년에 고생을 많이 했으나, 이후로는 한(閑), 과  낙(樂)으로 지내게 된다. 그런데, 소옹의 한가함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게으름과는 결이 다른 무엇이 있었던 듯싶다. 그는 심학과 상수학에 밝았다. 소옹 또한 벼슬살이를 마다한 은둔자였다. 진정한 은둔자 소옹은 한가롭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 사람이 은둔하게 되는 이유는 첫째, 안전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속에 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여 한가롭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은둔하는 이유는 즐겁고 싶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은둔을 선택한 백이숙제,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씻은 소부, 매화와 학을 아내 삼아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산, 임포... 등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은둔자들이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싶어서, 혹은 남을 해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은둔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세속을 끊고 은둔하려면, 먹을 물고기는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를 단련시킬 학문 또한 곁에서 한가롭지만 게으르지 않은 삶을 살도록 부추겨야 하니 말이다.   

  

참고문헌 - 유준영 외 공저 『권력과 은둔』, 북코리아.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이명욱,  종이에 채색, 173*94cm, 간송미술관

 <군선도群仙圖>부분, 김홍도, 1776, 종이에 채색, 132.8*575.8cm, 국보 제139호,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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