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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Jan 18. 2022

어린날의 고운 기억 - 신사임당, 문인화, 여성문예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어린 시절 방학이면 외할머니댁에 내려가곤 했다. 어린날의 기억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있다. 당시 시골의 조그마한 냇가도 그다지 맑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조금 더 깨끗한 물을 볼 수 있었고, 열목어 같은 송사리보다 조금 더 크고, 빠른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깨끗하고 맑은 물에선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손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당할 수 없었다. 하긴, 잡으려는 자와 도망가는 물고기 중에 누가 더 간절할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외할머니의 초가집에서 우리는 곧잘 방아깨비를 잡아다가 가지고 놀았다. 청개구리 또한 많았다. 새끼 청개구리는 정말 앙증맞을 정도로 작았다. 곤충채집을 한다고, 매미도 잡고, 그야말로,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로 점철된 나날들이었다.

정선, <오이와 개구리>, <<화훼영모화첩>>,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어린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림은 특히 사임당 신씨의 그림을 볼 때이다. 신씨의 그림에는 곤충도 있고, 풀도 있고, 과실도 있다. 사임당의 그림뿐 아니라, 상당 부분의 옛 그림은 약하다. 그림이 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옛 그림을 두고 은은하다. 정취가 있다. 운치가 있다. 등등으로 표현을 한다. 이러한 미감은 특히 문인화에 많다. 민화도 이러한 미감을 볼 수 있지만, 특히 문인화가 그렇다. 왜 그럴까? 문인화 특유의 고상함은 강한 그림에서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하게 그릴 때 고상하고 은근한 미감이 어우러질 수 있다. 또한 이런 약한 미감이 한가롭고 여유로운 정취를 표현하는데 탁월하게 스며든다.


 조선 시대에는 전란 이후 극적으로 살아남은 집안의 유묵을 대대로 전가, 보장하기 위해 자수를 선택하여 표의하거나, 모수한 후 첩으로 묶어 보관하였다. 17-18세기를 거쳐 서인계 인사들에 의해 신사임당이 이상화되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면서 서인계의 신사임당에 대립하여 남인계에서도『전가진완』, 『전가보첩』 등 집안의 여성 문예를 발굴하면서, 며느리 안동 김씨, 며느리 무안 박씨, 김임벽당을 통해 정적 공방을 이어가게 되었다. 1) 우리가 알고 있는 신사임당 말고도 그 당시에 여성 문예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정치적 방향이야 역사가 흐른 뒤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누가 더 극적인 삶을 살고 위인에 가까운 풍모를 지녔느냐에만 이야기가 집중될 뿐이다. 신사임당을 추대한 송시열 또한 숙종이 사약을 내릴 때, "내가 곧 죽게 생겼는데, 사약이 왜 이리 더디냐."라고 이야기한 것이 지금에도 전해진다. 송시열이 죽음에 초연했던 자세가 후인들에게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신사임당이 문예를 펼칠 때 분위기와 지금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평가도 남성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예술적 재능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개방되어 있다.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여전히 우리는 유리천장을 이야기 하지만, 여성 미술가들의 약진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국내 인문예술대학의 정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무언가 잉태하고 낳는 일인 예술은 지극히 여성적인 영역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덧붙이자면, 새로운 문예가 부흥할 조짐을 보이는 세대가 있다. 바로 2030이다. 지금의 2030 청년들의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긴다는 것에 있다. 40대인 우리 세대는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지금 2030은 데이트 코스로 미술관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하다. 왜 그들은 미술관으로 갈까? 미술관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2030 세대에 어떠한 예술가들이 탄생할지 기대해본다.


1) 양수정, <조선 17세기 수첩의 문예사적 가치>, p. 30 참고, 한국민화학회지, 13호, 2020.

도판) 상 / 전 사임당 신씨, <오이와 개구리>, <<초충도>>, 10폭 병풍 중 제3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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