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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Dec 13. 2021

영모화 - 따사로운 세계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옛 그림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왜 옛 그림에 이토록 매료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옛 그림에는 즐거움이 있고 한가로움이 있다. 산수화를 보고 옛 그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화조영모화를 보고  그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특히 탈속적인 산수화보다 앞으로의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주는 세계관은 화조영모화에 있다. 화조영모화에는 동식물들이 평화롭게 관계 맺고 있는 따사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반려견은 멀지 않은 과거에 애완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인간 중심적인 언어인 애완견과 달리, 반려견, 반려묘는 강아지,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함께 하는 생명체, 나아가 함께 사는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옛사람들의 그림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개나 고양이도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의 하나라는 생각이 존재한다. 특히, 이암의 그림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이암의 <화조구자도>를 보자. 꽃이나 새, 나비는 세밀하게 그려진데 반해, 강아지는 윤곽선이 분명하지 않게 몽글몽글하게 그려졌다. 강아지는 털이 있는 동물이다. 강아지를 강아지답게 하는 것은 강아지의 털이다. 이 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암은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듯하다. 이암의 강아지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유키오 리핏은 이암의 이러한 기법은(불분명하고 모호하게 대상이 표현되게 그리는) 일본 선종 화두의 주인공인 개를 그리기에 최적의 기법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18세기의 일본의 개 그림에서 이암의 개와 자세까지 같은 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개를 보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감정을 이암은 그림을 그릴 때 구현해 낸 것이다. 또 <화조구자도>가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강아지들의 다양한 행동이다. 세 마리 중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는 다양함이 있다. 앉은 놈, 자는 놈, 노는 놈이다. 자는 놈은 꿈나라에 간 듯이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 중이다. 앉은 놈은 무엇을 저리 응시할까? 제일 재밌는 것이 노는 놈이다. 새하얀 노는 놈은 방아깨비인지, 사마귀인지 곤충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암은 <화조구자도>에서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따듯하고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동식물을 그렸다. <화조구자도>를 보면 은근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그럼 이번엔 대놓고 우스운 영모화를 한번 보자. 김두량의 <긁는 개>다. 게슴츠레한 개의 눈빛이 묘하다. 졸린 건지, 무엇이 좋은 건지 헷갈린다. 그렇지만, 개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즐기는 중이다. 늘어지는 나른함 속에 뒷다리로 옆구리를 긁고 있다. 열심히 긁지도 않는다. 긁는 것마저 졸음 때문에 귀찮은 눈치다. 가서 개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싶다. 나무 아래 개는 집을 잘 지키라는 뜻도 담겨있다. 그나저나 어쩌나? 집을 지키기에 개는 만사 귀찮은 나른함에 빠져있으니 말이다.

   이암,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 16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86*44.9cm,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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