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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Feb 07. 2022

물에 비친 달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우리 가족은 보름달이 뜨면 셋이 쪼르르 창가로 달려가 손에 손 잡고 소원을 빈다. 우리 집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이 가끔 보이는데, 보름달이 크게 뜬 날은 모두 기분 좋게 소원 비는 날이다. 구성원 각자가 바라는 바가 있겠지만, 대강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빌어본다. 욕심 사납게, 덕지덕지 소원을 말하다 보면,'아구, 달님도 복잡하겠네. 한두 가지만 빌어야지..' 하고 "학업성취, 건강기원."이라는 두 가지 소망을 간곡히 바란다.


 여기 현진의 <낚시질>이라는 그림이 있다. 현진이란 작가에 대한 안내는 찾아볼 수 없다.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조선시대 활동했던 웬만한 작가들의 이름은 익숙한데, 현진이라는 작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으니, 작품도 연대 미상이다. 다만, 우리가 이 그림을 보는 이유는, 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왜 그토록 달을 좋아했을까?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해보다도 달을 좋아한다. 그건 아무래도 민족성 이라고도 볼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낚시질>에서 달을 보자. 달을 그리지 않음으로, 달을 나타냈다. 우리는, 유독 튀는 사람을 싫어한다. 자기주장을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을 싫어한다. 옛 그림에서 달은 <낚시질>의 경우처럼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리는 형식을 많이 취한다. 달 주위에 배경을 살짝 칠하고, 정작 달을 비우는 이러한 기법은, 주변을 빛나게 하고, 자신의 존재는 범부 속에 묻히는 도인을 떠올리게 한다. 남보다 뛰어나야 하고, 남보란 듯이 세상에 나아가 성공하고 싶은 젊은이의 마음과는 대비되는, 담담하고 은은하게 빛을 내는 노인의 마음을 닮은 달이다. 누구나 눈부시게 우러러봐야 하는 태양 보다, 그 빛을 흠모하는 몇몇에게만 조용히 자신의 아우라를 허락하는 달의 모습을 옛사람들이 좋아한 모양이다.

 

달을 좋아한 우리가 좋아하는 한 가지 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달항아리다. 사실 달항아리는 별명이다. 원래는 백자호다. 달항아리는 약간의 비대칭한 것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점선으로 가운데 반을 갈라서 비교해 보면, 묘한 비대칭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이 더욱 아름다움을 느낀다. 여기서도 우리의 심성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언가 너무 완벽한 것은 거부감을 지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도 구불구불한 것이 많아, 가옥에 쓰이는 나무도 제멋대로다. 그런데, 그것이 오묘한 맛이 있다. 똑떨어진 것보다, 비대칭인 달항아리를 어딘지 더 흡족해하는 것이 우리다.


다시, 현진의 <낚시질>을 보자. 물이 맑아, 달이  비칠 것만 같다. 고요한 물가에서 달빛에 취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달이랑 물은 왠지 잘 어울린다. 둘 다, 다른 것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과 달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그윽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의연히 받아주는 것에서 거울과 같은 깨끗함이 요구된다.

  현진, <낚시질>, 연대 미상, 종이에 담채, 37.5*63.1cm, 국립중앙박물관

    백자대호, 18세기 조선,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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