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은 Aug 27. 2021

물건 애착- 문방구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붓과 책, 먹 등의 몇 가지 단출한 문방구들이다. 강세황은 <문방구도>뿐 아니라, 선비가 은둔할 때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그린 <청공도>를 남겼다. 먹은 금방이라고 먹의 향기가 날 것만 같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황해도 해주와 평안도 약덕에서 특산품으로 먹을 많이 제조하였고, 특히 해주 먹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이 높았고, 양덕 먹은 향기가 좋았다고 전한다. 1) 그뿐만 아니라 오래된 책에서 나는 내음이 책장을 펼치면 금방이라도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풍겨올 것만 같다.


1988년에는 국제적인 행사가 대한민국에서 열렸다. 모두들 알고 있다. 88 올림픽이다. 갑작스럽게 88 올림픽 이야기가 왜 나올까 궁금하겠지만, 다름이 아니라, 88 올림픽 기념 문방구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하고자 한다. 88년이 조금 지나 아마도 91년쯤 되었던 것 같다. 자주 가는 문방구는 꼬마들의 물욕을 자극하는 물품들이 가득했다. 각종 인형, 장난감, 딱지, 구슬, 학용품, 뽑기 등등… 참새가 방앗간 들락이듯, 어린 소녀인 나의 낙의 하나는 문방구에서 새로 들어온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자주 들락이는 어린 꼬마가 귀찮았던지, 문방구 아저씨는 퍽이나 불친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인식이 좀 다르지만, 당시는, 삶에 찌든 어른들에게 어린이는 배려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좁은 문방구에서 나는 보물을 발견했다. 바로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연필이 한 다스 나온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연필의 디자인은 꽤나 독특했다. 회오리 모양의 호돌이가 새겨진 연필, 남색 반짝이는 칼라의 호돌이 연필 등등… 기억나는 것은 연필의 상단에 호돌이가 그려있었다는 것...나는 득템을 해서 신나는 마음에 연필 12자루를 들고 집으로 와서 내 책상 서랍 속에 고이 간직했다. 아무도 모를 거라는 나의 착각과 함께… 그러나, 보물은 모두들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연필은 하나, 둘씩 없어졌고, 성인이 다 될 때까지 가지고 있던 연필들은 그렇게 하나, 둘씩 사라졌다. 나중에 보니, 언니가 탐이나 몰래 하나씩 깎아 썼던 모양이다. 두고두고 이야기하면, 언니는 그 뒤끝 한번 길다고 타박하곤 했다. 지금도 나의 작은 보물이었던 연필 12자루… 지금 가지고 있었다면 꽤나 구경할 만한 물건이다. 이렇듯, 범생이들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물건들을 골라 보라면 저마다 다르겠지만, 문방구가 꼭 들어갈 것이다. 옛 선비나 지금의 학생들에게 문방구는 그냥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곁에 두고두고 보고, 즐기게 되는 애호하는 사물이다. 이런 문방구는 물욕을 자극하는 사치스러운 화려한 물건은 아니다. 한가로운 한때, 살포시 책과 함께 곁을 지키는 소담한 물건들이다.


홍경택 2)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회화를 보면 많은 물건들이 나온다. 특히 뽀쪽한 연필이 등장하는 회화는 인상 깊다. 강세황의 <문방구도>는 보고 있으면, 짧은 시 한 소절이 절로 나올 것만 같다. 홍경택의 연필을 보면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시험장이 연상된다. 옛날에도 물건 욕심은 존재했지만(책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현대는 물질이 가장 풍요로운 때가 아닌가 싶다. 유혹하는 물건이 진열대에서 화려하고 반짝이게 빛난다. 먹거리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티브이에는 발 디딜 틈 없는 물건들에 치어 사는 사람들의 짐을 신박하게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도 유행했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하다. 강세황의 <문방구도>를 보고 있자니, 고즈넉한 암자에서 며칠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1) 윤철규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 이다미디어. P. 64 참고

2) 홍경택- 1968년생. 경원대학교. 홍경택은 학부 수업시간(우리는 수업시간에 한국미술사, 동시대 미술 등에 대해 배웠다. 평론 쓰기, 전시기획 등을 다루는 학과였다. )에 그의 작업태도에 대해 들었을 때 사뭇 인상 깊었다. 홍경택은 작업실을 마치 출근하듯이 다닌다고 한다. 예를 들면 9시부터 6시까지 줄곧 작업실에서 근무하듯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필자의 교수님께 들었는데, 교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좀 심플하게 살아보라고 하셔서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강세황, <문방구도>(부분), 지본 수묵, 25.2*20.8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이전 09화 우리가 사랑한 책과 사물 - 책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