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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은 Nov 17. 2021

매화를 사랑한 선비 조희룡

향그러운 옛 그림과 한가로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사와 같은 시대 인물로 조희룡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그가 문자향 서권기 1)를 강조한 추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는 조희룡의 매화그림을 좋아한다. 더불어 그가 탈속한 삶을 살며, 한가롭게 살다 갔다고 믿는다. 한가롭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매화를 완상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조희룡의 한가로움을 마냥 부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다. 조희룡은 1851년에 유배를 가게 된다. 진종의 조천에 반대하는 권돈인과 그에 연루된 김정희의 복심으로 지목되어 조희룡은 임자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2) 아무튼 조희룡이 한가로움은 어떤 고독을 전제로 했던 듯싶다. 추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묘하게도 인생의 겨울이 있다. 맹자에서 하늘이 쓸만한 사람을 낼 때에는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몹시 괴롭게 하여, 그를 단련한다고 되어있다. 같은 시대 추사도 유배를 가서 자신의 세계를 이루었다. 조희룡이 유배를 가는 임자도의 풍경을 담은 시를 잠시 감상해 보자. 


 메밀꽃이 피어 저녁 빛이 밝은데, 

 끊어진 다리, 시든 버들에서 매미가 홀로 우네.

 허수아비가 후인과 마주 서서.

 일만 섬의 정을 담고 전답을 보호하네. <<해악 암>>38쪽.


멋들어진 시구이지만, 그 마음은 참담했을 것이다. 조희룡의 매화를 내가 참 좋아하는 이유도 굉장히 아름답고, 감상적인 화면을 연출하는 것에 있다. 옛 그림에서 매난국죽은 선비들의 절개나 기개를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매화는 그냥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한겨울에도 꽃을 피워내며, 함부로 향기를 팔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어 선비의 성품을 상징했다. 그 때문에 선비들은 매화에서 자의식을 키워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매화를 이토록 아름다운 꽃으로 바라본 조희룡이 놀랍다. 결국 매화도 꽃일 뿐이다. 현대미술가 박이소 3)가 난에서 그냥 풀을 본 것처럼, 조희룡도 매화에서 그냥 꽃을 본 것은 아닐까? 

                                박이소, <그냥 풀>, 1987, 25*58cm, 종이에 먹


1) 화풍()은 대체로 소식으로부터 이어지는 철저한 시·서·화 일치의 문인 취미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그림에서도 서권기()와 문자향()을 주장하여 기법보다는 심의()를 중시하는 문인화풍()을 매우 존중하였다. 마치 예서를 쓰듯이 필묵의 아름다움을 주장하여 고담(: 글이나 그림 따위의 표현이 꾸밈이 없고 담담함)하고 간결한 필선()으로 심의()를 노출하는 문기()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추사 김정희 

2) 이성혜, <<조선의 화가 조희룡 - 매화에 미친 문인화가의 일생>>, 한길아트, p. 62.

3) 박이소의 <그냥 풀>은 학부시절 수업시간에 처음 접했다. 그는 작고 작가이다. 전통의 고매함을 비틀고, 조소하는 박이소의 냉소적인 시선이 신선했다. '그냥 풀'이라고 그린 박이소의 난도 '그냥 풀'이라고 보기엔  꽤 잘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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