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호 길게 하는 당직사관
군대 간부가 병사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다
"지금부터 2020년 7월 13일 저녁 점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생활관에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당직병의 목소리. 오후 10시다. 시끄러웠던 생활관이 금세 조용해진다. 다만 속삭이는 목소리는 생활관마다 조금씩 남아 있다. 보통은 잡담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들어온 신병이....
제가 드디어 상병을 다는데....
휴가 나가면 뭘 먹어야 할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생활관에 있는 모든 병사가 같은 주제로 이야기한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하사가 당직사관*이기 때문이다. 저녁 점호는 10개의 생활관을 당직사관이 하나씩 둘러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당직사관이 점호 시간을 길게 하느냐 짧게 하느냐에 따라, 병사가 점호 이후에 할 수 있는 연등*, 흡연, TV 시청 시간이 결정된다. 신임 하사는 저녁 점호를 길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병사가 당직사관이 '용건만 간단히' 식의 점호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대화 주제로 삼고 있다.
1 생활관부터 10 생활관까지 순서대로 점호를 하는데, 10시 20분이 되어도 당직사관이 7 생활관에 오질 않는다. 10시 20분이면 점호가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다. 병사들의 바람은 오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0시 25분. 뭉툭한 군화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7 생활관에 당직사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활관을 대표하는 병사가 점호 인원 보고를 한다.
"필승! 제7 생활관 저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여섯, 결원..."
"야, 됐어 됐어! 보고 생략! 아픈 사람 없지?"
병사는 일시 당황하더니,
"엇... 넵. 없습니다."
의문스러웠다. 분명 당직사관은 점호 보고를 간단히 하도록 하는데, 왜 점호 시간은 긴 걸까.
당직사관은 대표 병사를 살짝 비켜 지나가더니, 관물함 위에 있는 책을 흘깃 보고는 내게 말을 건다.
"책이...'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 철학에 관심 많나 보네? 책 안쪽 한 번 봐도 될까?"
"혹시라도 인생에 도움이 될까 요즘 읽고 있습니다. 펼쳐보셔도 됩니다."
"줄 그으면서 책 읽나 보네. 책 꾸준히 집중해서 읽는 사람 보면 되게 멋있더라."
딱딱한 생활관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진다. 당직사관은 '오늘 수고했다' 한 마디 하고는 다음 생활관으로 간다. 8,9,10 생활관으로 갈수록 당직사관의 목소리는 점점 작게 들리지만, 병사들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는 작아지지 않는다.
"저녁 점호 끝났습니다. 연등 및 흡연 희망자는 당직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오후 10시 40분. 당직병의 방송이 들린다. 평소보다 네 배는 긴 저녁 점호였다.
당직사관은 병사들과 친해지려 했다. 당직사관의 역할인 인원 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호 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했다. 병사의 생활 습관이 드러나는 관물함에서 병사와 가볍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물건을 찾았다. 그날의 물건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군생활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곤 했다. 병사의 개인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 군대에서, 책을 읽으면 개인의 삶을 보장받는 느낌이었다. 혼자서 책을 읽고 사색하는, 단체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활동 말이다. 군대에 있음을 잠시 잊게 해주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런 역할을 했던 책과 간부*는 서로 먼 존재라고 생각했다. 간부는 병사를 병사로만 대해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저 병사를 군 병력의 일부로 보고, 병사 하나하나의 사생활을 알지 않아도 된다. 어찌 됐든 군대는 탈 없이 돌아간다.
내게 그런 존재였던 간부가 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펼쳐보기도 하며 '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개인의 습관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려는 태도가 고마웠다.
어쩌면 간부를 간부 역할만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나 보다. 때문에 간부는 병사를 병사로만 본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긴 점호 덕에 개인 공부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당직사관에게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점호가 끝나고 개인 공부를 하려는 병사들은 당직실에 모여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한다. 인원을 파악하여 독서실의 자리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가장 높은 선임 병사가 보고한다.
"보고자 등 7명 연등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이 나한테 연등 끝났다고 말해 주고."
연등 보고를 할 때 항상 있는 대화다. 이때 당직사관이 한 마디 덧붙인다.
"... 책 읽는 사람은 책 열심히 읽고."
날 향해 말하는 것만 같아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책 읽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러지 않았다. 다만 당직사관이 병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안타깝게도, 간부를 긍정적으로 인식했던 기억은 이 날 이후로 딱히 없다. 2년의 군생활을 함께 하는 간부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다.
당직사관*: 밤을 새우며 병사가 있는 생활관에 머무는 부사관.
연등*: 점호 이후의 시간에 개인 공부, TV 시청 등의 활동을 하는 것.
간부*: 병사의 업무를 감독, 지시, 통제하는 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