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플라주 무늬 옷, 새까만 군화, 파란색 줄이 두 개 박혀있는 모자. 군화가 무거운지도 모르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2020년 5월 8일에 첫 휴가를 나왔다. 설레는 마음을 누르려 해도 행동은 한껏 들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옆에 군인이 보였다. 일병이었고, 군복이 아닌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거셨다.
"휴가 나왔는가베? 근데 머리가 와이리 기노? 옆에 있는 군인은 디게 짧은데."
"부대마다 규정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옆에 있던 군인의 답이었다.
'저 군인에게 말이라도 걸어봐야 하나. 뭐지 이 상황? 이것도 인연인데…. 로 첫 마디를 시작해야 하나?' 따위의 생각을 하는 사이에 분위기는 뻘쭘해졌고, 버스를 발견하자마자 얼른 타 버렸다. 집으로 가면서, 어르신은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자신의 군 생활이 문득 떠올라서 반가운 나머지 스스럼없이 말을 거신 걸까, 생각했다.
복귀 날에는 군화가 무겁디무거웠다. 다시 군복을 입고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를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이번엔 아주머니 세 분이 옆에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고, 아주머니분들은 아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지금 상병인데 휴가를 저번 달에……."
"우리 아들도 군대 갈 때가 됐는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
나는 또 정류장에서 어르신을 만났을 때처럼 부담을 느꼈고, 버스를 발견하자마자 탔다. 군대를 보냈거나 보내게 될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군복 입은 날 보며 아들을 자연스레 떠올린 걸까, 생각했다.
군복을 입은 나의 모습은 어르신이 자신의 옛 군 생활을 떠올리도록 했고(아닐 수도 있지만), 아주머니분들은 가족 중에서 소중한 한 명을 떠올리도록 했다. 군인의 모습으로 사회에 나간 나는 그분들의 생각의 시작점, 말하자면 촉매제였다.
아주머니와의 만남 아닌 만남을 끝으로 부대에 복귀한 그 날, 그러니까 2020년 6월 13일에 일기에 빨간 글씨를 이렇게 남겼다.
사회로 나간 군인은 여러 사람이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군대는 우리나라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거리다. 아마 한국인 대부분은 군대와 한 번쯤은 엮여 봤을 것이다. 지인 중에서 조금만 찾아봐도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일 예정인 사람이 금방 나올 것이다. 자신이 군인이 아니더라도 군인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괜히 지긋이 쳐다볼지도 모른다. 군대와 관련이 있는 지인이 생각나서. 그 지인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군인이 모습을 감추고 나서 지인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에도 지금도, 군복을 입고 사회에 나가는 건 부담스럽다. 관심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 그 관심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기에. 일기에 있는 문장을 따지고 보면,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로 나간 군인이 아니라 '사회로 나간 군복'이었다. 군인인 나는 군인이기를 원치 않으며, 군복을 입지 않으면 관심을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사람은 옷을 입을 때 자신만의 목적을 가진다. 오랜만에 소개팅을 하는 날이면 멋을 부리고자 화려한 옷을 입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운동을 하고 싶으면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는다. 이처럼 옷의 쓰임과 그 옷을 입는 이의 목적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하지만 군복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군복의 쓰임은 군인으로 보이기 위함이지만, 정작 군복을 입은 나는 군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군복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서 사회에서 온갖 관심을 갈구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군복은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효율적인 생각 촉매제인 것을. 많은 사람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군복이란 촉매제를, 마냥 싫어할 수는 없어 일기에 빨간 글씨로 남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