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의 권위 내려놓기
여린 성격 탓에 후임에게 무시당하는 것. 군대에 들어가기 전 가장 큰 걱정이었다.
선임을 처음부터 무시하는 후임은 없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이등병이 되면 '과연 어떤 선임과 군생활을 하게 될까' '선임에게 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위의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게다가 자대*에 오면 '일단 선임에게 경례부터 잘해라'라고 교육받으니, 선임을 무시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후임이 선임과 친해지면서, '군대 선임이니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후임의 생각이 희미해지는 때가 온다. 선임도 나처럼 군대에 끌려온 데다 나이도 비슷한데, 굳이 선후임 관계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면서. 후임이 '후임 역할'을 연기하던 시절은 끝이 난다. 후임은 선임을 편하게 대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는 경례도 하지 않는다. 깍듯하던 말투도 반토막이 나기 시작한다. 선임은 당황스럽다. 이미 친해진 마당에 후임의 군기를 잡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군대에서 후임과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지내자니 영 아닌 것 같다. 선임은 후임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후임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음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결국 선임은 결단을 내린다. 친하게 지냈던 후임과 거리를 두기로 한다. 후임은 영문도 모른 채 선임과 멀어진다.
나보다 5개월 늦게 들어온 후임 K가 있다. K는 농구를 좋아했다. 나도 농구를 좋아했다. 우리는 자주 농구 실력을 겨뤘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농담도 주고받았다. 군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K는 그때까지만 해도 선임들에게 각 잡힌 경례를 했다. 손 옆 날과 팔이 일직선을 이루는 경례였다.
그러다 내가 농구를 하다 무릎을 다쳤다. 병원에서 확인해보니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수술이 필요했다. 청원 휴가를 내서 민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부대에 복귀하니 정확히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여전히 목발 신세였고 농구는 꿈도 꾸지 못했다.
K와는 자연스레 멀어져 있었다. 나와 농구를 즐겼던 K는 상병이 되어 있었다. 같이 농구를 할 수도 없었다. 각 잡힌 경례는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K는 이미 다른 무리와 친해져 있었다. 나와 성격이 전혀 맞지 않는 무리였기에 어울리는 건 무리였다. 이전에 있었던 접점이 모두 사라졌으니 멀어지는 건 당연했다.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부대에서 계속 농구를 하며 K와 더욱 가까워졌다면. K가 선임에게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워가는 시기에 내가 옆에 있었다면. 선후임 관계가 희미해지고 서로의 진짜 성격이 드러날 시기에, 내 성격과 K의 성격이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K와 거리를 뒀을까? 아니면 선후임의 관계가 무너지더라도 관계를 유지했을까?
항상 전자를 택해 왔다. 후임은 아랫사람이고, 아랫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선임은 후임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딱히 아쉬울 게 없으니.
후자를 택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후임은 '후임 역할'을 연기할 수밖에 없기에 선임과 친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후임이 연기를 끝내고 드러낸 성격이 나와 맞지 않음을 알게 될 때, '착각했을 뿐이었구나' 하며 허무함을 느낄까 두려웠다. 그 허무함에 선을 넘어버린 후임의 행동이 더해질 때의 피곤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을 넘는다는 건 보통 상대를 향한 무례한 행동을 의미하지만, 군대에서는 후임이 선임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임의 권위가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군대가 강제로 부여한 권위일 뿐인데. 선임의 권위를 포기한다면 후임을 아랫사람이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테고, '후임의 선 넘는 행동'은 '사람마다 하는 특이한 행동' 정도가 되지 않을까. 선임의 권위를 포기하고 자신의 성격을 숨김없이 드러냈기에 후임이 선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선 넘는 후임을 더 이상 아니꼽게 바라볼 수 없다. 차라리 고마울 것 같다. 후임에게 그리 나쁜 선임은 아니었구나 하고.
후임이 연기하는 '후임 역할'이 끝났을 때 인간관계에 허무함을 느끼든, 후임이 선을 넘을 때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오든,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만났다고 생각하고 후임을 대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후임이 선을 넘을 테고, 그때 '나 군생활 잘했네'하고 멋대로 생각해버릴 것이다. 선 넘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고, 선을 넘을 때의 불편한 마음을 감사히 여길 것이다. 나는 분명 후임에게 선임이지만, 스스로 선임이 된 건 아니기에.
어디 선 넘어주는 후임 더 없나.
자대*: 한 달 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군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곳. 훈련소 생활이 끝났다고 군생활이 끝난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