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의 진심을 간부가 알 수 없는 이유
당직사관이 내 글을 보았다. 당직사관의 긴 점호를 병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다룬 글이었다.
군대에서는 병사의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매일 점호를 한다. 병사 입장에서는 점호가 짧게 끝날수록 좋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짧을수록 좋은 것처럼. 그렇다면 점호를 길게 하는 당직사관을 욕하는 글을 썼을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당직사관은 개인의 취미와 같이 군대와 관련 없는 분야를 주제로 병사와 이야기하다 보니 긴 점호를 하게 되었고, 그의 노력에 감명받아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사실 찝찝하긴 했다. 글은 쓰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글에 등장하는 인물을 동의도 없이 소재로 사용하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인물을 좋게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언제쯤 진실을 알릴까 고민하던 중, 마침 그가 점호를 하는 날이 왔다. 기회다. 그가 군대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병사와 나누기 위해 마음을 열었을 때 그를 글의 소재로 사용했음을 알려야 한다. 오후 10시. "지금부터 2021년 7월 22일 저녁 점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어김없이 들리는 당직병의 안내 방송. 예상대로 당직사관은 점호가 끝날 만한 시간인데도 병사와 대화하느라 점호를 끝내지 않는다.
당직사관은 10개의 생활관을 돌며 인원을 파악하는 식으로 점호를 진행한다. 1~10 생활관 순으로 점호를 하는데, 내가 있는 8 생활관에 그가 오기까지 기다리느라 진실을 알려야 함을 잊을 뻔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생활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점호 끝나고 독서실에서 공부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한다. 나는 손을 들었다. 무슨 공부하느냐 물어본다. 공부는 아니고 글을 쓴다 답했다. 어떤 글을 주로 쓰느냐 물어본다. 에세이라 답했다. 이제 진실을 알릴 때가 되었다.
"저... 당직사관님을 소재로 글 하나 썼습니다."
"진짜로? 언제? 내가 볼 수 있는 거야?"
브런치에서 쓰는 작가명을 알려드렸다. 당직사관은 신이 나서는 '시간 날 때 한 번 보겠다' 말하고는 생활관을 빠져나갔다. 바로 '혹시 당직사관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나? 이걸 간부님에게 보여 줘도 되는 건가?' 생각을 했다. 병사가 간부를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간부가 알게 된다, 이는 병사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간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후로는 그가 내 글을 읽은 뒤의 후기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아마추어 작가이긴 하지만, 아마추어처럼 자신의 글을 읽은 뒤의 후기를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글을 보게 된 것은 간부와 병사의 계급 차이가 잠시 사라지는, 마치 야자타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군생활을 하는 현실에서는 계급 차이가 명확했기에 병사가 간부를 재촉할 수는 없었다.
3일 정도 지났을까. 궁금하지 않은 척 연기하는 것에 지쳐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무렵에,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일과가 끝난 뒤 운동을 마치고 힘이 빠진 상태로 생활관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잘 봤어."
그의 말 한마디에 힘이 솟아났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다행입니다. 그보다 간부님에게 이런 걸 보여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어때. 오히려 재밌게 봤어. 나도 어렸을 땐 글도 쓰고 그랬었는데."
마음 같아선 "병사의 진심을 알게 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계급 차이는 간부가 병사의 진심을 확인했음이 확실해지는 그 순간에도 존재했기에.
만약 그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나의 전역날이 될 것이다. 전역을 하면 병사와 간부의 계급 차이가 사라지기에, 병사가 간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쓴 편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장이 되어도 전역날은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편지에 쓸 내용을 소재 삼은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을 소재로 한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상 공개 편지를 받은 셈이다. 심지어 아직 내가 군생활을 하는 중에. 병사의 진심을 간부가 확인함으로써 계급의 차이를 극복한 소통이 이루어졌다. 아니, 소통을 이루어 냈다. 그것도 간부가. 간부는 병사와의 계급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병사와 소통할 필요까지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가 병사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병사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려 했던 간부의 노력은 내가 글을 쓰게 만들었고, 끝내 그가 나의 글을 보게 했다.
문제는, 병사는 간부에게 긍정적인 의견만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병사와 간부가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병사가 간부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간부에게 나쁜 감정을 가졌다면 그것을 주제로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 글을 간부에게 보이려 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쁜 감정은 군대에 억지로 끌려왔기에 간부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병사가, 어떻게든 병사를 군인으로 보고 일을 시키려는 간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 이러한 나쁜 감정은 우리나라에서 징병제를 시행하는 한 해결할 수 없기에, 간부에게 나쁜 감정을 표출해 봤자 더 큰 갈등을 일으킬 뿐임을 병사는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이 병사와 간부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병사인 나는, 간부에게 긍정적인 의견이라도 솔직히 드러냈음에 만족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