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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r 06. 2024

빈 수레가 요란하다 - 틸트 카

놀이공원 알바라고 해서 놀이기구를 운영하는 알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님이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만 타는 것도 아니다. 츄러스도 사 먹고 퍼레이드도 관람하고 인생네컷에서 사진도 찍는다. 츄러스 먹으면서 퍼레이드를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손님이 놀이공원에서 돈을 쓰면 대부분의 경우 쓰레기가 생긴다. 다른 손님이 놀이공원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게끔 쓰레기를 치워 주는 안전청결 캐스트가 있어야 한다.


놀이공원에서는 손님이 소비를 하는 장소에서 쓰레기가 주로 발생하고, 그 장소 주변에 쓰레기 통을 배치한다. 손님이 쓰레기 통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전청결 캐스트가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철제 쓰레기 통에 비닐을 두 겹 씌워 놓고, 절반 이상 차 있으면 수거한 뒤 새 비닐로 교체해 놓는다. 쓰레기를 수거해서 담을 수 있는 이동식 쓰레기 통이 필요한데, '틸트 카(tilt car)'가 그 역할을 한다. 'tilt'는 '기울이다'라는 뜻인데, 카를 기울여서 쓰레기를 쏟아내서 버릴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면서 기울이기 편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구의 이름의 뜻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틸트 카는 정말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도구다. 틸트 카를 끌고 가다 보면 덜컹거리는 소음이 너무 크다 보니 옆에서 같이 업무를 하는 캐스트와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묻혀 버리고,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틸트 카를 쓰는 이유는, 롯데월드에 손님이 많이 와서 쓰레기가 너무 많을 때 많은 양의 쓰레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틸트 카를 끄는 안전청결 캐스트의 모습. 신났는지 토끼 모자를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반면에 '머드 카'틸트 카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가볍기에, 이동할 때 소음이 적은 편이다. '머드 카'는 바닥에 붙어 있는 이물질(껌 자국, 탕후루 자국, 공차 타피오카 펄을 의도적으로 바닥에 붙여 놓은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청소 용품을 많이 담을 수 있다. 쓰레기를 많이 담는 것보다는 롯데월드의 전체적인 청결 작업을 함에 용이하다. 물론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쓰레기를 담을 수는 있다.

머드 카를 끄는 캐스트의 모습. 긴 집게를 이용해 밀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롯데월드 부산은 단체 손님(중, 고등학생 단체 소풍, 회사 워크숍 등) 이 있거나 특별한 행사(불꽃놀이, 연예인 초청)가 있지 않은 날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보단 없는 날이 더 많고, 자연스레 틸트 카보다는 머드 카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쓰레기도 별로 없는데 요란한 빈 수레인 틸트 카를 가져가 봤자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유독 틸트 카의 시끄러움을 싫어했다. 머드 카를 끌 때보다 소음이 커서 신경이 거슬리는 걸까 생각했지만, 어떤 도구로 청소를 하든 청소를 한다는 사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틸트 카의 소음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머드 카가 소음이 적다고 해서 좋아하진 않았다. 그저 틸트 카보다 덜 싫을 뿐이었다. 아마 청소를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즉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청소를 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손님)에게 더욱 요란하게 알려질수록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틸트 카도 머드 카도 없이 빗자루만 들고 청소를 하러 나가면 부끄러움은 줄어들었지만 부끄럽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청소 도구 없이 맨 몸으로 롯데월드를 돌아다니면 부끄러움은 사라졌다.


청소는 자신의 몸뚱이를 더럽히면서 주변은 깨끗이 하는 고귀한 행위라는 말이 있다. 청결한 환경의 롯데월드에서 손님이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뿌듯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와 정말 열심히 청소하시네요. 덕분에 청결한 환경에서 잘 놀고 있어요!" 라고 직접 말해주시는 손님은 롯데월드에서  1년을 일했지만 한 분도 없었다. 청결 작업을 하는 캐스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손님은 있었겠지만, 청결한 곳에서 롯데월드를 즐기는 상황은 손님이 낸 입장료에 포함된 권리다 보니 굳이 직접 칭찬을 말로 전하기에도 애매한 것이다. 만에 하나 말로 칭찬해 주는 손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칭찬은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개인을 향한다기 보다 단체에 속한 수동적이고 힘없는 개인을 향한 것이기에, 능동적인 개인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내겐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청소 업무에 회의적인 마음을 가진 상태로 일을 하다가, 동료 캐스트가 틸트 카의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틸트 카의 뒷부분을 들어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앞바퀴에서만 나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머드 카를 끌 때 나는 소음과 비슷해진다. 다만 계속 틸트 카의 뒷부분을 든 상태로 이동하다 보면 팔이 아파서 결국 포기하게 된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원찮은 방법으로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요인을 제거하려 했지만, 그냥 팔 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소리를 줄인다고 청소를 하는 부끄러움을 해결할 순 없었다.


그런데 다른 동료 캐스트는 오히려 정 반대로 행동했다. 소음을 더 크게 내는 것이다. 틸트 카를 끌면서 좌우로 흔들면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러면 손님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뒤에 뭔가 오는구나' 하고 비켜선다는 것이다. 물론 가는 길마다 그러는 건 아니고,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소음을 크게 내서 길을 낸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며 사람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 따릉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참 별난 생각과 행동이지만, 한편으론 청소하는 본인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기보다는, 틸트 카가 시끄럽다는 특징을 잘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청소 업무를 해 내려고 하는 태도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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