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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r 04. 2024

미성년자 흡연 단속 (2화)

"어딜 도망가냐!!!"


비겁하게 도망치는 놈에게 소리를 지르며 급히 쫓아간다. "아이씨" 하고 바로 도망간 놈은 잡히면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빠른 줄행랑으로 이미 시야에서 벗어났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놈은 도망치는 놈을 보고 덩달아 도망치다가 내게 목덜미를 잡힌다. 정확히는 패딩 끝자락을 손가락 끝 마디로 겨우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 마디로라도 덜미가 잡힌 놈은 푸다닥거리며 저항하다가 도망칠 수 없겠다 판단했는지 움직임이 잠잠해진다. 


"아 형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이제 와서 선처를 바라다니, 너무 늦었다. 서슴없이 무전기를 들어 상황을 담당 바이저님께 보고 드린다.


"흡연 청소년 자이언트 스윙 옆 흡연실에서 적발했습니다. 도망간 청소년 한 명은 빨간색 패딩을 입고 있으며, 파크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적발한 청소년은 게이트(손님이 입/퇴장을 하는 곳)로 인계하겠습니다."

"수신 양호. 게이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놈의 얼굴은 망연자실해 있다. 미성년자 때 흡연을 한 적도 없고, 당연히 흡연을 하다가 걸리는 일도 없다 보니, 어느 정도의 절망감인지 가늠하긴 어렵다. 수능을 치고 망한 정도? 부모님께 들키면 호적이 파일까 걱정하는 정도? 아니면 흡연하다가 들킨 적이 많아서 아무런 타격이 없지만 반성하는 태도라도 보이는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미성년자가 흡연을 한다'는 상황을 들킬 듯 말 듯하는, 짜릿한 스릴을 즐기기 위한 행동일까?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자유롭지 못한 고등학교 생활의 유일한 짜릿함일까. 어떠한 절망감을 느끼든, 나는 캐스트로서 미성년자의 흡연을 단속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도망을 치지 말았어야죠 그럼. 뭐 도망 안 쳤어도 봐주진 않았을 테지만."

할 말이 없는지 입을 열지 않는 놈들이다. 


놈들은 내가 가야 하는 곳으로 따라와야 하기에 내가 놈들보다 앞장서서 걷는다. 혹시라도 또 도망칠 수도 있으니, 정면을 보고 걷다가 뒤를 돌아보다가를 계속 반복하며 걷는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불만, 원망, 짜증, 언짢음, 후회가 뒤섞여 있는 표정을 접한다. 


'그러게 담배를 왜 굳이 굳이 롯데월드까지 와서 피우니. 안 피웠으면 나도 너희를 잡을 이유도 없고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잖아. 내향적이지만 롯데월드에서 일하고 싶어서 안전청결 부서에 지원했는데, 자꾸 미성년자 흡연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면 범인 잡는 형사처럼 돌변해야 하는 거 나도 불편해. 그리고 도망쳐봤자 결국엔 정문으로 퇴장할 때 다 걸리게 되는데 쯧....'


한 다섯 번째 뒤를 돌아서 놈들을 살필 때였을까. 이상하게 놈들의 표정이 밝아져 있다. 뭐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일이 있을 리 없는데?


"야 ㅋㅋㅋㅋㅋ 쟤 저기 있다!!!"

"형 쟤 아까 맨 처음에 도망쳤던 걔예요!! 야 뭐 하냐?? 일로 와!!"


먼저 도망가서 숨은 흡연 청소년 : 역시 너희야 구하러 왔구나 / 이미 잡힌 놈들 : 아니 우리도 잡혔어. 여기 있었네? 얼른 잡혀.

동료를 배신하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이라니.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충신은 못 될 놈들이다. 공범인 친구를 발견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아무리 흡연을 하긴 했어도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이구나 싶었다. 게이트로 가는 길, 롯데리아 건물 계단에 숨어있던, 가장 빠르게 도망을 쳤던 친구는 이미 검거당한 친구들에게 발각되는 상황이 어이없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동료들 쪽으로 다가온다. 


"일로 와 보세요"


미성년자 흡연을 단속하는 상황임을 다시 깨달았는지, 멋쩍게 웃는 표정이 반성하는 듯한 무표정으로 급격히 바뀌고는 나를 보며 다가온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패딩을 벗어서 왼쪽 팔에 걸어 놓았다. 


"... 빨간 패딩 입고 다니면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한테 눈에 띌 까봐 일부러 벗은 거예요?" 

" 넵... 너무 잘 보이면 잡히기 쉬울 것 같아서... " 


순수하다. 솔직하다. 솔직히 귀엽기도 하다. 도망치는 모습이 참 괘씸했는데, 학생 특유의 순수한 모습에 마음이 풀어진다. 피식 웃음이 터지고 놈들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며 경직된 분위기도 덩달아 풀어진다. 놈들에겐 담배 피우다 걸렸던 순간, 끌려가는 순간, 먼저 도망쳤던 동료를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가는 순간, 이 모든 순간을, 훗날 돌아봤을 때 추억으로 떠올릴 것이다. 


다만 추억은 추억이고 잘못은 잘못이다. 잘못을 저질렀던 순간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순간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놈들을 담당 바이저님께 인계해야만 했다. 잘못을 저지르는 '놈들'이 아니라, 잘못을 인지하고 고칠 수 있는 '학생들'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테다. 놈들은 담당 바이저님께 담배와 라이터를 반납해야 했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은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과연 놈들은 학생들이 될 수 있을까. 안전청결 캐스트의 노력과 바이저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훈계가, 학생 신분으로 담배를 피우는 짜릿함보다 놈들에게 우선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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