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육일칠 Mar 09. 2024

빈 수레가 요란하다 - 틸트 카 (수정)

틸트 카를 끄는 안전청결 캐스트의 모습. 신났는지 토끼 모자를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틸트 카(tilt car)'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도구다. 안전청결 캐스트가 쓰레기를 수거해서 담을 수 있는 이동식 쓰레기 통이 필요한데, '틸트 카(tilt car)'가 그 역할을 한다. 'tilt'는 '기울이다'라는 뜻으로, 카를 기울여서 쓰레기를 쏟아내서 버릴 수 있다. 워낙 무겁다 보니 제작 의도와는 다르게 기울여서 쓰레기를 버리기 힘들고, 수거한 쓰레기를 하나하나 꺼내서 쓰레기 장에 버려야 한다. 끌고 돌아다니면 덜컹거리는 소리 덕에 같이 업무를 하는 캐스트와 대화하기도 힘들다.


캐스트 A : 와 오늘 손님 엄청 많네!

굴러가는 틸트 카 : (우르르 쾅쾅 덜컹덜컹)

캐스트 B : 손님 뭐라고?! 안 들려!

캐스트 A : 나중에 말해줄게!

캐스트 B : 뭐라고?!!

캐스트 A : (그저 답답한 듯한 너털웃음)

캐스트 B : (에이 모르겠다 같이 웃자)


틸트 카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바쁠  사용한다. 수거해야 할 쓰레기가 적어서 동료 캐스트와 여유로운 대화를 나눌 정도일 땐, 틸트 카가 아니라 '머드 카'를 사용한다. '머드 카'는 틸트 카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가벼워 이동할 때 소음이 적다. 또한 바닥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청소 용품을 많이 담을 수 있다. 물론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머드 카를 끄는 캐스트의 모습. 긴 집게를 이용해 밀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롯데월드 부산은 단체 손님(중, 고등학생 단체 소풍, 회사 워크숍 등) 이 있거나 특별한 행사(불꽃놀이, 연예인 초청)가 있지 않은 날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보단 없는 날이 더 많고, 자연스레 틸트 카보다는 머드 카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쓰레기도 별로 없는데 요란한 빈 수레인 틸트 카를 가져가 봤자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동료 캐스트가 틸트 카의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틸트 카의 뒷바퀴를 들어서 앞바퀴만 지면에 닿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덜컹거리는 소음의 원인이었던 바퀴가 3개에서 1개로 줄면서, 머드 카를 끌 때 나는 소음과 비슷해진다. 다만 계속 틸트 카의 뒷바퀴를 든 상태로 이동하다 보면 팔이 아파서 결국 포기한다. 팔 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다.


다른 동료 캐스트는 오히려 정 반대로 행동했다. 소음을 더 크게 내는 것이다. 틸트 카를 끌면서 좌우로 흔들면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러면 손님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뒤에 뭔가 오는구나' 하고 비켜선다는 것이다. 물론 가는 길마다 그러는 건 아니고,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소음을 크게 내서 길을 낸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며 사람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 따릉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틸트 카가 시끄럽다는 특징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청소 업무를 해 내려는 태도가 신선했다.


틸트 카의 시끄러움은 언제든 다른 인력으로 대체될 수 있는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틸트 카가 덜컹이며 주변 손님에게 존재감을 알릴수록, 누구든 할 수 있는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알려졌다.


청소업은 자신이 더러워지는 걸 감수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만드는 신성한 직업입니다.
 물론 저의 더러움엔 이유가 없습니다.

<선천적 얼간이들> EP54_외국인 노동자 다이어리 III '작가의 말'

위 인용구의 첫 번째 문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손님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손님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손님이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손님의 입장료에는 롯데월드를 쾌적하게 즐길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만에 하나 말로 칭찬해 주는 손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칭찬은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개인을 향한다기보다 단체에 속한 수동적이고 힘없는 개인을 향한 것이다. 능동적인 개인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내겐 와닿지 않는다. 


인용구의 두 번째 문장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청소업은 신성한 직업이 맞지만, 본인의 더러움은 그다지 신성하지 않다고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다가왔다. 롯데월드에 할애하는 주 40 시간은 내가 아니어도 문제없이 흘러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대체 불가능한 개인으로서 인정받길 원하는 내게 보람을 주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더러움엔 청소업이 신성한지 납득시킬 만한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 


틸트 카의 뒷바퀴를 들어 소음을 줄이고, 틸트 카를 흔들어 소음을 키우는 건 안전청결 캐스트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알바의 업무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대체 가능한 업무를 하면서도 본인만의 방식으로 시끄러운 틸트 카의 소음에 대처하려는 태도는 배울 가치가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서 훌륭히 작용할 것이다. 

이전 11화 빈 수레가 요란하다 - 틸트 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