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요?

by 사육일칠
우리에겐 이 초밥이 수백 개의 초밥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 하나의 초밥이 손님 한 명 한 명에겐 전부야. 그러니까 단 하나라도 대충 만들지 마.

- <미스터 초밥왕>에서 -

본인의 기분과 상황에 관계없이 손님의 질문에 일관된 친절을 담아 대답하는 노동자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같은 질문을 하루에 최소 10번을 받는 데다가, 그런 날을 반복해서 보내는 노동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마치 이 질문을 처음 받은 것처럼 손님에게 친절히 대답한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퍼레이드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요?"라는 질문을 손님에게 최소 1번은 듣는다. 안전청결 캐스트의 멘트가 업무 기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신입 (업무 들어온 지 1달 이하) : 아 퍼레이드는 저기 회전목마 풍차 보이시죠? 저기서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돼요. 리틀팜랜드 쪽으로 향한 다음, 캐슬 앞에서 멈춰서 1부 정지 공연 하고요. 다시 푸드드롭 레스토랑 쪽으로 돌아서 토킹 트리 앞에서 2부 정지 공연 한 다음, 다시 회전목마 풍차 쪽으로 들어갑니다.


고인물(경력 1년이 가까워질 때) : (회전목마 풍차 쪽을 오른팔을 쭉 뻗어 가리키며) 저 쪽에서 시작합니다.


사실 고인물의 대답에는 문제가 없다. 묻는 말에 정확한 대답을 했다. 다만 내 안전청결 캐스트 생활을 돌아봤을 때, 업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신입처럼 대답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친절한 응대를 해야 한다는 캐스트의 책임감보단, 수많은 손님 중 한 사람이니 물음에 필요한 대답만 하겠다는 효율성을 중시했다.


동료인 안전청결 캐스트가 자녀분과 함께 롯데월드를 방문한 손님에게 칭찬 VOG를 받았다. 캐스트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 친절히 응대해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롯데월드의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내용이었다. 칭찬 VOG를 쓰는 건 꽤나 수고로운 일이다. 롯데월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칭찬 VOG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한 뒤, 캐스트에게 응대를 받았던 상황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해야 한다. 손님은 이 과정을 기꺼이 거칠 정도로 캐스트의 응대가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캐스트 입장에서는 손님의 같은 질문에 같은 내용을 대답하는 것이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여길 때도 있다. 하지만 손님은 캐스트에게 질문하는 상황 자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캐스트의 응대에 따라 롯데월드 전체의 서비스 정도를 판단하게 된다. 동료 캐스트의 친절한 응대를 받은 손님이 롯데월드의 서비스 전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이 예시이다.


같은 안내를 반복하는 안전청결 캐스트는 앵무새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같은 안내를 반복할지라도, 안내를 듣는 손님은 매번 다르다. 앵무새와 달리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데다가 손님에게 추억을 선물할 수도 있다. 손님에게 같은 내용을 한결같이 친절한 태도로 안내하는 태도는 손님에게 '나는 손님이자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단체 주문을 받은 초밥집 사장님이 초밥 하나하나를 성심껏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밥 하나하나가 전달받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겐 전부이고, 그 초밥이 손님에게 작용하는 추억 또한 손님마다 다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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