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육일칠 Mar 27. 2024

손님의 프레첼을 못 먹게 하고 칭찬 배지를 받는 법-2

"킹받쥬?"


롯데월드는 캐스트를 정말 킹 받게 한다. 얼마나 킹 받게 하냐면, 캐스트가 확실하게 킹 받을 수 있게끔 '킹'의 주제를 정하여 상을 준다. 롯데월드 <킹받쥬> 프로젝트는 월마다 정한 주제로 '킹'을 선정하여 캐스트에게 '00킹' 배지를 주는 프로젝트다. 예를 들어 '친절'이 2월의 주제라면 2월에 가장 손님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 캐스트에게 '친절킹' 배지를 주고, '복장'이 3월의 주제라면 3월에 코스튬(캐스트 전용 복장)이 가장 말끔한 캐스트에게 '복장킹' 배지를 준다. 


손님의 프레첼을 발로 툭 건드려서 넘어뜨려 못 먹게 하고는 칭찬 VOG를 받기까지만 해도 킹받쥬 프로젝트의 존재를 몰랐다. 바이저님의 호출에 의해 통합사무실까지 가고, 어트랙션 캐스트 두 분을 롯데월드 파크 내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만나는 게 아니라 특정 행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만나며 '아 뭔가 본격적인 행사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통합사무실에서는 롯데월드 캐스트가 아닌, 롯데월드 직원이 한 데 모여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안전청결 부서의 일도 '일' 이긴 하지만 '알바' 이기에, 안전청결 사무실에서 캐스트끼리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각자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압도당했다. 이게 사회인의 모습일까. 깔끔한 오피스 복장이나 단정한 캐주얼 복장을 입고 '일'을 하는 정직원은, 놀이공원 전용 옷(코스튬)을 입고 일하며 사회적인 자리를 잡지 못한 20대 초중반 캐스트에게 부러움을 자아낸다.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지만 캐스트일 뿐인 모습이 초라했다. 캐스트를 짧은 시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킹받쥬 프로젝트 또한 통합사무실의 광경에서 이루어졌을까. 사회적인 자리를 잡지 못한 캐스트는 차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행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기했다. 


"캐스트 분들, 이 쪽으로 들어오실게요."


대회의실에 들어가니 이미 친절킹 수상자를 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로티 물통과 친절킹 배지를 받았다. 행사에 비해 선물이 초라하지 않은가 싶었다. 킹받쥬 프로젝트 관계자께서는 행사 초반이다 보니 조금은 미흡하고, 앞으로 행사를 거듭하며 선물의 퀄리티도 좋아질 예정이니, 동료 캐스트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친절킹을 받은 캐스트의 수상 소감을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공개된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던 기억.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왼쪽 가슴팍에 친절킹 배지를 달았다. 배지는 달기 불편한 클립으로 되어있었다. 자칫하면 달다가 바늘에 찔려 피가 날 법도 하고, 바늘로 옷을 뚫어서 클립을 고정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불편함은 배지를 찼을 때 느끼는 고양감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고, 시상식 이후 일주일은 한 번도 빠짐없이 배지를 달았다.


배지를 받은 게 얼마나 좋았는지, 평생 안 찍던 셀카까지 찍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그 아끼던 배지를 달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다는 게 귀찮았다. 처음 느꼈던 고양감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배지를 달 때 왜 고양감을 느끼는지 두 가지 이유를 돌아봤다.


1. 희귀성에서 고양감을 느꼈다.

달마다 킹받쥬 행사를 하면서 희귀성은 감소했다. '킹'받은 사람이 3명, 6명, 9명으로 늘어날수록 친절킹 배지는 평범해졌고 덩달아 고양감은 사그라들었다. 희귀성은 곧 '남보다 특별하다'라는 비교에서 작용한다. 킹 받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그라드는 고양감을 통해, 비교에서 비롯된 고양감은 줄어들어야 마땅함을 알았다.


2. 친절킹에서 '친절'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음에서 고양감을 느꼈다.

'친절킹' 배지를 단 순간은 반드시 친절해야 했다. 배지를 본 손님은 '이 분은 당연히 친절하겠지?' 하고 기대하기에, 응대에 필요한 최소한의 친절함을 보인다면 실망한다. 전혀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박보영 님이 항상 밝고 친절한 텐션을 유지해야 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친절함을 보이면 비판받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도 친절킹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게 좋았다. 친절한 캐스트로 인정받았으니, 친절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마음껏 실현해 보고픈 열망이 생겼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고양감의 이유도 힘을 잃어갔다는 것이다. 점점 '상을 받는 사람의 특성'과 '상의 이름이 지니는 의미'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상을 주는 기준은 '킹의 이름이 지니는 의미를 충실히 실현했느냐' 보다는 '우수 캐스트 쿠폰*을 많이 받았느냐'가 되었다. 킹받쥬 프로젝트를 통해 상을 받는 캐스트도 "내가 왜 '열정'킹이라는 배지를 받지?" 하고 의문을 품는 정도였다. 


킹의 주제를 정하지 않고 '우수 캐스트'만 뽑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배지를 계속 끼고 다니지 않았을까? 수상을 한 캐스트 중에도 초반엔 배지를 끼다가, 갈수록 배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 캐스트가 많아졌다. 배지를 끼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배지를 낄 때의 고양감이 크지 않은 것이다. 킹받쥬 배지를 받은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희귀성에서 느끼는 고양감은 줄어들고, 배지의 단어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음에서 느끼는 고양감은 배지를 받는 순간에서조차 느끼지 못한 탓이다.


킹받쥬 배지를 받은 고양감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으나, 배지를 받는 순간의 기쁨은 분명했다. 친절킹 배지 덕분에 일주일 간 기쁘게 일했고, 동료 캐스트의 반응이 즐거웠다. 짧은 기쁨에 불과하지만, <킹받쥬>프로젝트는 반복되는 업무에 지친 캐스트에게 활기를 선사했다.


친절킹 배지가 가방에서 떨어져 나간다. 기차에서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짐칸에 있던 가방을 거칠게 꺼낸 탓이다. 친절킹 배지가 주는 고양감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캐스트 업무를 하지 않을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배지를 달고 다녔던 걸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기차에 들어가 배지를 찾아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떠나는 기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님의 프레첼을 발로 건드려 못 먹게 했던 순간, 칭찬 VOG를 받고 기뻐했던 순간, 친절킹 배지를 끼며 기뻐했던 순간을 떠올린 뒤, 친절킹 배지가 주는 기쁨을 충분히 만끽했음을 깨닫고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은 기차를 등지고 후련한 웃음을 지으며 걸었다.






이전 14화 손님의 프레첼을 못 먹게 하고 칭찬 배지를 받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