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육일칠 Mar 20. 2024

손님의 프레첼을 못 먹게 하고 칭찬 배지를 받는 법

1화

앤티앤즈 프레첼이 바닥에 쏟아지며 흙가루에 버무려진다. 퍼레이드 안전 통제를 하러 급히 뛰어가는 중에, 바닥에 놓인 프레첼 포장지를 발로 툭 건드려 넘어뜨린 탓이다. 정신은 이미 퍼레이드 통제에 가 있는 상태라서 인지, 발에 걸리는 감각을 늦게 알아채고 뒤돌아 본다. 쏟아진 프레첼을 본 손님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당혹감이 얼굴을 잡아먹을듯한 큰 마스크를 우습게 뚫고 나온다. 손님에게 사과드리기 위해 손님에게 걸어가며, '퍼레이드 하면 이동하는 손님이 많아서, 바닥에 놓아두면 당연히 쏟아질 텐데 왜 그러셨을까...' 불만 섞인 의문을 중얼거리다, 손님 얼굴을 마주한다. 불만은 잠시 넣어두고, 친절하게.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바닥에 있는 걸 못 봤나 봐요."

"아뇨 괜찮아요...! 저희가 바닥에 놓아둔 게 잘못이죠."


손님의 부드러운 태도에 불만은 곧바로 해소되었다. 손님의 부주의와는 별개로 프레첼을 못 먹게 된 손님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죄송하네요. 제가 프레첼 사 드릴게요."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손님의 정중한 사양에 간단한 목례 후 다시 퍼레이드 통제를 하러 간다. 손님이 사양하지 않고 "어어... " 하고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였다면 개인 카드라도 지갑에서 뽑아서 건네드릴 마음이었다. 실물 카드가 없었다면 삼성 페이로 지문을 인식시킨 뒤 잠시 휴대폰이라도 건네줄 작정이었다. 손님이 캐스트에게 프레첼을 얻어먹을 때의 불편함을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사려 깊은 손님의 대응이 감사했다.


일주일 정도 후. 카카오톡 알림이 시끄럽게 울렸다. 안전청결 업무 공유 단톡방에 서너 명의 캐스트가 내 이름을 연속으로 호명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이름에 느낌표를 하나씩 붙여가며 연속으로 호명하는 것이, 광신도가 종교적 존재의 이름을 넋 놓고 부르는 모습이었다. 생기와 초점 없는 동태 눈깔로 확인하던 업무 공유 단톡방을, 집사를 공격하기 직전인 고양이처럼 눈을 땡그랗게 뜨고 확인했다.

이 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름을 외치는 동료 캐스트들의 모습이다.
당시 VOG 내용. 캐스트가 캐스터가 되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동료 캐스트 K가 흙 범벅 프레첼의 주인인 손님이 내게 쓴 칭찬 VOG를 캡처해 단톡방에 공유한 것. 프레첼을 못 먹게 하고 심지어 변상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런 공개 칭찬 VOG를 받으니 얼떨떨했고, 칭찬을 받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칭찬 VOG의 보상으로 받은 세븐일레븐 3000원 쿠폰을 쓰면서도 이 쿠폰의 쓰임이 정당한지 알쏭달쏭했다. 칭찬 VOG를 받는다고 해서 캐스트의 등급이 올라가는 건 아니어서, 뭐 기분 좋은 일이네~ 이런 것까지 써 주시다니 감사하네~ 칭찬 VOG를 받았던 적이 있었지~하고 미래에 오늘을 회상할 정도로만 여겼다.

일이 커졌다. 바이저님께서 대회의실에서 하는 증정식에 참석하라고 하셨다. "미리 축하해~" 라니. 무엇을 축하해 주시는 걸까? 이미 칭찬 VOG 보상으로 세븐일레븐 쿠폰 받아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버터 쿠키를 야무지게 해치웠는데 또 받을 것이 있단 말인가? 뭔진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숙지하고 있겠습니다!!" 답해드리고는 행사 날짜를 기다렸다.


근무 스케줄을 관리하는 캐스트에게만 행사 참석 사실을 알렸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알려서 주변 사람의 기대치를 높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 공무원 붙을 것 같다는 말을 부모님께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괜히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감은 커지니까. 정확히는 행사 참여 이후에 '축하받을만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지만 태연함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 행사 참여 전에 호들갑을 떨어 버리면 그 소망이 깨진다. 행사 날까지의 4일 간 '나 행사 참여한다!' 티 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지만, 태연한 사람의 이미지를 쟁취하기 위해 티 내고픈 마음을 꾹꾹 눌러 놓았다.


대회의실 행사 참여 당일 날. 담당 바이저님의 카톡 연락이 왔다.


"나랑 같이 대회의실 들어가야 하니까, 통합사무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정확히 5분 정도 뒤에 바이저님이 급한 발걸음으로 통합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바이저님과 함께 통합사무실로 들어서니, 행사에 참여할 어트랙션 캐스트 두 분이 대기하고 있었다. 상을 받는다는 기쁨에 주체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통제하는 것도 잠시, 통합사무실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 3/27(수) 발행 예정인 2화에 계속됩니다.



이전 13화 퍼레이드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