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당직병의 요술주걱

막내 일병의 밥배달은 고달프다

by 사육일칠

요술주걱 할멈 이야기를 아는가? 어떤 할멈이 우연히 도깨비 세상에 들어가 밥을 무한정 지을 수 있는 요술주걱을 훔쳐 집에 있는 손자를 배불리 먹였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군대에도 요술주걱 할멈이 있다. 바로 근무지에 밥을 배달해 주는 당직병이다. 그 당직병은, 요술주걱의 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6명이 있는 근무지에 10인분 이상의 밥을 배달해 준다. 문제는 요술주걱 할멈은 손자를 위해서 스스로 요술주걱을 훔쳤지만, 당직병은 근무지에 있는 선임들의 압박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밥을 정량보다 더 훔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직병의 부담은 밥배달을 하는 전날부터 밥배달을 하는 날 오전 10시 50분까지 서서히 커진다.


그러다 드디어 11시가 되면, 점심 밥배달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 대대 앞에 도착한다. 밥배달의 주인공은 한 일병. 대대에서 가장 막내이고, 밥배달을 처음 해 본다. 그의 머릿속은 선임들에게 맛있는 걸 많이 가져가 좋은 이미지를 얻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밥을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가장 맛있어 보이는 반찬을 많이 담아. 나머지는 너 맘대로 하고.' 라고 했던 맞선임의 가르침도 계속 되뇌인다. 오늘 점심의 주요 메뉴는 햄 김치찌개와 닭튀김. 둘 중 어느 것을 많이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식당에 도착한다.


일병은 맞선임의 가르침을 더 떠올린다. 임기응변하는 방법이었다.

첫째. "몇 인분 필요하세요?" 조리병이 질문하면 최소 10인분 이상 필요하다 할 것. 저번엔 분명 6인분 필요했는데 왜 10인분이냐 물어보면, 어떤어떤 훈련 때문에 간부님들이 근무지에 계신다고 할 것. 훈련 명칭은 알아서 생각.

둘째.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간식거리는 '이거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져갈 것.


모든 준비는 끝났다. 배운 대로 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식당에 들어가 반찬통 뚜껑까지 열었지만 몇 인분 필요하냐고 묻지는 않는다. 한시름 덜었다 싶었는데 아뿔싸, 다른 조리병이 닭튀김을 '알아서' 배식해주고 있다. 이러면 닭튀김을 양껏 가져갈 수 없다. 조금만 더 달라고 보채지만 조리병은 요지부동이다. 괜찮다. 아직 햄 김치찌개가 남아있다. 국을 담는 통에 햄과 국물을 잔뜩 담고, 반찬을 담는 통에도 국물은 빼고 햄만 건져서 가득 담는다. 다행히 조리병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성공이다! 남은 밑반찬은 다른 반찬통에 담으니 이젠 간식을 담을 차례다. 오늘의 간식은 설레임. 이걸 싫어하는 선임이 있을 리 없다. 무조건 많이 가져가야 한다. 햄 김치찌개를 많이 담은 덕에 자신감은 올랐다. 신나서 담기 시작한다. 4개...5개...6개...7개...쯤 담는데 들리는 한 마디.

"이제 그만 가져가셔도 돼요." 약간 짜증 섞인 말투. 근무지에 10명이 있어서 3개만 더 가져가겠다 말하면 되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내 밥이나 먹자. 해서 햄 김치찌개를 한 술 뜨는데, 왠지 초조해진다. 11시 20분이다. 적어도 35분에는 근무지에 밥을 배달해야 욕을 안 먹을 텐데. 아이스크림 갯수도 많이 부족한데 어쩌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급하게 먹는다. 하지만 이 정도 쯤은 괜찮다. 배고픈 선임들에게 밥을 빨리 가져가서 좋은 점수를 딸 수만 있다면. 30분에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주변에 조리병이 아무도 없다. 설레임을 잔뜩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맞선임의 둘째 가르침을 떠올리며 설레임을 바구니에 꽉꽉 채운다. 채우는 동안 설레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둑질을 하는 기분이지만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렇게 간식거리까지 모두 담고 나면 드디어 밥을 배달할 수 있다.


근무지에 밥을 배달해 주니 선임이 놀라며 말한다.

"너 조리병이랑 머리채 잡고 싸운 거냐? 엄청 많이 가져온 걸 보니 이겼나 보다?"

최고의 칭찬이다. 고된 밥배달이 끝나고 뿌듯함을 느끼며 대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직병은 자신이 느낀 뿌듯함에 상당한 위화감을 느낀다.


왜 뿌듯한거지?


여유로운 식사를 포기하고 도둑질을 해서 선임들의 신임을 얻은 것이 그렇게 뿌듯해 할 일인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선임들의 칭찬을 받았지만, 그저 선임들이 두렵기에 한 행동이었다. 마음 같아선 밥을 정량만 가져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당직병은 위화감을 느낀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에는 조리병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조리병이 제재를 하지 않으면 당직병 입장에서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으니까. 조리 대대에서 '이만큼만 가져가라' 같은 지시를 내렸다면 당직병은 부담없이 정해진 양만 가져가면 된다. 조리병과 당직병이 서로 좋지 않은가. 그 양을 정하지 않은 조리 대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마트에 들어가 물건을 훔친 뒤, "자리를 비운 게 잘못이지." 라며 책임을 주인에게 지우는 것과 같았다. 우리 대대가 '필요해서' 가져가는 것이기에, 알아서 정량의 밥을 가져가는게 맞다. 조리 대대에서 당직병을 제재할 의무가 없다. 선임들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당직병에겐 미안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 대대의 사정일 뿐이다. 우리 대대에서 생긴 문제점이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군대에 억지로 끌려와서 근무 서는 것도 서러운데, 밥이라도 많이 주면 안 되냐고. 어차피 남지 않느냐. 하지만 남을지 안 남을지 조리 대대도 알 수가 없다. 나름 식사 인원을 예상해서 음식을 만들지만, 식사 인원은 끼니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밥을 분별없이 줬다가는 식사를 못 하는 인원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인원도 근무를 서는 인원만큼 중요하다. 다들 끌려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조리 대대에서 정량 배식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약 조리병이 정량 배식을 하더라도 너무 원망하지 말기를. 조리병도 억지로 끌려온 사람이고, 간부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그저 음식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자, 문제는 조리 대대가 아니라 우리 대대에 있으며, 정량보다 많은 밥을 배달하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 없음을 당직병이 깨달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정량만 배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선임들의 압박을 받는 대대 막내가? 불가능하다. 이게 정말 큰 문제다. 문제가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어쩔 도리 없이 해야 한다는 것. 당직병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 대대와 조리 대대의 소통으로 밥배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이미 서로서로가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당직병이 먼저 화해(?)의 의미로 밥을 정량만 가져가는 것. 조리 대대의 불만과 당직병의 부담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근무지에 올라가 있는 병사들이 불만을 표할 것이다. 줬다 뺏는 느낌일 테니. 하지만 당직병과 조리대대를 위해서라도 정량만 먹는 것이 맞다.


군대에서 '들키지 않는 가라는 진짜다'라는 말이 있다. 꼼수를 부려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밥을 더 훔치는 꼼수는 들키는 것과 상관없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다. 이런 꼼수는 가짜에 불과하다.


요술주걱 할멈은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요술주걱을 훔쳤다지만, 당직병은 굳이 성격조차 잘 모르는 선임들을 위해 요술주걱 역할을 할 필요가 있을까. 도깨비 세상에서 빠져나오면 그만인 요술주걱 할멈과 달리, 당직병은 앞으로 조리 대대와 부딪힐 일이 많다. 당직병은 전래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군대에 끌려온 일반인이다. 더 이상 일반인에게 요술을 기대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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