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고 이상해서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대인기피증 때문에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대체로 나아졌지만 폭식과 구토를 반복했으며, 짧은 기간에 살도 많이 빠졌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고, 그들은 나 때문에 걱정을 놓지 못했다. 희망과 꿈은 내 사전에서 사라졌다. 대신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 이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몹시 슬프고 우울해졌다. 우울증 때문에 더 우울해지다니. 이런 악순환이 어딨을까?
어느 날, 교과서 지문 안에서 익숙한 명언을 발견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의 말이었다. ‘우울증’이라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우울증을 통해 내가 잃은 것은 확실히 있지만 얻은 것도 분명 존재할까? 그의 말대로라면 반드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내게 닫힌 문만 있는 것 같았다.
선물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열린 문은 어디에 있는지 나를 향해 닫힌 온갖 문을 두드려대며 열어보려고 애썼다. 실제로 우울증을 통해 내가 깨달은 점, 얻은 점, 성장한 점을 쓰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통해 내가 얻은 점을 쓰고 싶었다. 열린 문을 반드시 찾고 싶었다.
1.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는 시간. 바로 우울이 바닥을 쳤을 때이다.
나의 우울이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지 잘 생각해 보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육아였다. 쉴 틈이 없었다. 도와줄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친구도 없었고, 마음을 나눌 이는 더더욱 없었다. 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울증은 너무나 쉽게 찾아왔다.
처음엔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면 힘들다고 통곡만 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자신을 위해 좀 더 살라는 의사의 조언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내게 '책임감'에서 벗어나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껴안을 수 없다고. 다른 사람이라면 진작에 못 한다고 도망갔을 것이라 말하며 나를 좀 더 아끼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 놓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 주중을 버틸 힘이 생겼다.
2.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존재를 자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란 인간이 무엇 때문에 우울의 터널에 진입하는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혼자 있을 때 행복하고,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즐거우니까 '혼자 있기로 결심했다'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내가 왜 아이들이 울면서 보챌 때 한사코 도망가고 싶었는지, 아이의 울음소리를 못 견뎌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우울증을 겪기 전에는 몰랐다.
끊임없이 감정을 거부당했던 기억, 냉담한 반응, 부정적인 평가와 비난에 노출되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나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있다. 내 안의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 머물면서 울고 있다. 지금은 잘 다독여서 무사히 떠나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3.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였다.
우울의 한 복판에서 몸부림칠 때가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우울증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한 점이다. 의사는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권유했다. 걷기부터 혼자 드라마 보기까지 다양한 일을 했지만 역시 글쓰기였다.
나는 글쓰기가 좋았다.
내 이야기를 밤낮으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이토록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나는 글쓰기였고, 이걸 통해 나 스스로 우울을 많이 치유하고 있다.
4.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늘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 한 번씩 전화해서 내 안부를 묻는 사람,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주는 사람, 나에게 한결같이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 우울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헬렌 켈러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우울증을 통해 4가지나 되는 선물을 찾았다. 고개를 돌려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자 열린 문이 보였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는 사실. 그 뻔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잊고 살았다. 또 잊을 게 뻔해 글로 옮겨 적어놓으니 뿌듯했다. 우울증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바쁘게 지냈을 것이며, 나를 지탱해주는 많은 이들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울하다면, 당신이 발견하지 못한 열린 문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허무맹랑한 소리 같다고 욕할지도 모르고,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외칠지도 모르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걸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내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는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