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날 그 술을 거절못했을 때!

by 이작가야

어느 해 여름, 특별한 휴가를 맞이한다. 집사님과 내가 결혼한 지 2년 차에 아이를 갖기로 야심 차게 계획을 짠다.

집사님(남편)은 6남매 중 막내아들이다. 큰 형님은 딸만 셋이고, 둘째 형님은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셨다. 그런데 불행히도 둘째 형님의 아들이 하늘나라로 갔다.


내가 결혼 전 집사님 집에 인사를 간 날 하늘나라로 간 조카 녀석은 정말 소눈 처럼 눈이 크고 맑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녀석은 예비 작은엄마인 나를 잘 따랐다.

아직도 그 큰 눈이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 데...

자전거로 등교를 하던 중 시골길을 쌩쌩 달리던 자동차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지인, 친인척 아무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이 없었는데,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시조카라니 그것도 어린아이가... 너무 슬펐다.






아들을 낳아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뚝 하고 떨어졌다.

시부모님은 나만 쳐다보신다. 마치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막내며느리도 아들을 뚝 떨어뜨릴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시고...

엄청 부담스럽고 걱정이 되니 아이를 갖는 게 겁이 난다. 집사님까지 아들이면 좋겠다고 하고, 친정엄마도 기왕이면 아들을 낳아, 시부모님이 기뻐하시면 좋겠다 하신다.


아들을 어떻게 낳지?

사랑하는 언니도 딸만 둘이다. 주위에 아들이 많지 않다.

어디다 묻기도 민망하고, 그래도 언니가 젤 편하다.

첫째 딸을 낳고 둘째는 아들을 낳고 싶었던 언니는, 자기가 시도했던 방법들을 전수해줬다. 어느 잡지에서 스크랩한 '아들 낳는 방법'에 관한 자료를 주었고 몇 가지 식단 정보를 주었다. 여자가 알칼리성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데, 나는 과일을 잘 안 먹으니 에휴...







''이거이, 실패자의 조언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잔소리 말고 믿어봐. 미리미리 체질을 바꿔야 하니 과일 싫어도 많이 먹고, 홍 서방은 고기 많이 해주고...''

''아유, 그렇게 잘 좀 해보지 왜.''

''아니, 난 잘했지. 형부가 자다가 블랙커피를 못 마시겠다잖아...''


언니는 실패 요인이 형부라고 믿고 있다ㅋ. 남자가 블랙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혈기를 왕성하게 한다는 이론인데, 커피를 싫어하는 형부가 블랙커피를 마시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게다.


어쨌든 뭐든 해봐야 한다. 그래도 딸기는 좋아하니 딸기를 많이 먹는다. 집사님은 불고기, 제육볶음, 후라이드 치킨...

다 좋아하니 다행이다. 문제는 금주를 해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라는데... 애주가 집사님이 문제다.






비교적 날이 좋을 때 아이를 낳고 싶어서 출산 예정을 '봄'으로 잡고 본격적인 플랜을 짠다. 집사님은 산성 식품, 나는 알칼리 식품을 집중적으로 섭취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준비하고 산부인과도 다녀와 '좋은 날'을 잡는다.


''이번 여름휴가기간이 딱이야.''

''알았어. 숙소 알아볼게.''


결혼생활 30여 년 동안 집사님이 여행 관련 숙박을 해결한 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숙소가 문제의 씨앗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숙소 해결됐어. 운 좋게 당첨이 됐네.''

''우와~~~ 잘 됐네!''


숙소는 다름 아닌 집사님이 재직했던 은행에서 제공하는

직원 연성소이었다.






결혼 2년 차,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새댁은 집사님 '기'도 살려줄 겸, 또 마음을 편안히 다스려야 한다면서

직원들 샌드위치까지 싼다. 어리어리하기는...

은행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샌드위치를 쫙 돌리니, 여기저기서 '누구는 장가 잘 갔네, 어쩌네' 칭찬이 빵빵 터진다.


설악산에 있는 연성소에 도착한다. 방에 짐을 풀고,

단 둘이 산책을 나간다.


''너무 좋다. 공기도 맑고, 바람도 시원하고 우후~''

''그러게 좋으네. 샌드위치 싸느라 힘들었지.''

''아냐 힘들긴, 다들 잘 먹으니 좋네. 아들 낳을 람 그 정도 그릇은 되야쥥. 암튼 설악산 정기받으러 여기 온 거니까 꼭 성공해야 해. 화팅!''

''오케이 화이팅!''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로 돌아와 TV를 보며 뒹굴뒹굴 휴가를 만끽한다.

이때, 똑똑똑 노크소리.


''홍ㅇㅇ! 나와서 같이 수박 먹자~~~''


수박이 수박 만일 줄이야ㅠ.






수박으로 입가심을 한 사람들은 같이 바베큐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고, 거절 못하는 집사님은 첫날이니 술은 안 먹을 거라며, 저녁만 같이 먹자고 한다.

정말?

왜 그 말이 생각나지?

개가 똥을 끊지 ㅋ

뭔가 불길한 징조가 스윽 ㅠ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첫날은 맥주 몇 잔...

둘째 날은 소주도 몇 잔...


한술 더 떠, 이틀 째가 되면서 함께 간 동료의 아이들이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아들 낳기 프로젝트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3박인데 3박째는 아예 아이들을 내게 맡기고 어른들은 장을 보러 갔다. 마지막 날이니 쫑파티를 하자는 거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더니...

그야말로 난관봉착 이다.

망했다.


천성이 낙천적이니 망정이지, 아님 화병 나서 쓰러질 일이다.


''연성장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이고 됐네요! 어차피 지났는데 어쩌겠어.''

''다 친한 사람들인데 아들 낳겠다고 문 잠그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술 좋아하는 사람이 바보같이 쮸삣쮸삣 있는 것도 보기 싫고... 암튼 몰라 몰라, 말함 짜증만 나니까,

이번은 끝.''


집사님을 너무 좋아하는 선배가 아는 직원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며 사기 아닌 사기를 친 게다.

'아들 낳기 프로젝트'는 술을 거절 못한 참사로 끝이 났다.


'아마, 하늘이 허락한 때가 이번이 아닐 거야...'




(초록 꽃봉오리가 저렇게 활짝 핀, 란타나)



휴가가 끝나고 그러니까 그다음 달에, 기적같이 아이가 생겼다. 다시 계획을 좀 더 치밀하게 세워보기로 하고 재충전을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은...

아들이다.

어린 손주를 먼저 보내시고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린

아버님, 어머님이 기뻐하실 생각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설악산 휴가 때 계획은 실패했지만, 성공했다 해도 분명 '딸이었음'으로 믿고 싶다. 술을 거절 못하고 망쳐버린 아들 낳기 계획은... 하늘이 이루어주셨다.

감동이다.


하늘이시여~~~

부디 우리 애주가 부부를 외면치 않으시고

살펴주시니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부디~~~

지켜주소서!




keyword
이전 03화우리 부부가 젤 신중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