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코로나너!입막고,거리두고생각할께 이제 좀 가라!

코로나로 추가된 수식어 '작가'

by 이작가야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

'전임교수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임교수'가 되는 것은 더 그렇다. 전임을 하려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맥은 물론, 종종 뒷거래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때론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인 제의도 더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하여 '기부'라는 명목으로, 학교에 뭔가를 헌납하는 방식이다. 캠퍼스 어딘가에 나무를 몇 그루 심는다 던가... 그땐 그랬다. 물론 재직했던 학교는 아니다.

그랬다면 강의도 안 했을 테니.


''대출이라도 받아서 밀어줄게 당신 하고 싶으면 해 봐.''


착한 홍표(남편)의 말이다. 홍표의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을 접었다. 아니 전임 한 거나 다름없이 기뻤고 든든했다.

전임 욕심을 버리니 더 열심히 강의만 전념할 수 있었다.




내가 전임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있을 자신도 없고, 그러기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할머니가 내게 몰빵한 열정 유전자가 문제다. 특히 음악과 운동 분야에서는 그 녀석이 더 가만히 있질 않는다.


음악과 운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건 다 좋아한다.

각종 댄스, 요가, 필라테스, 라인댄스, 줌바까지...

운동 장르에 따라 음악이 다른 것도 매력이다.

요가, 필라테스, 필록싱, 라인댄스, 줌바댄스는 특히 수입이다. 수입이다 보니 팝송이 주된 음악이다.

중1, 첫 번째 영어시간에 발음이 좋다는 선생님의 칭찬에 영어를 잘하기 시작했다.

팝송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나.

팝송을 들으며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더더욱 좋다.




인도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요가를 시작으로

재즈댄스, 에어로빅, 방송댄스, 필라테스, 라인댄스, 줌바댄스...


취미로 시작했는데 곧 잘한다.

아니 잘한다.


강사보다 안무를 더 잘 외운다.

심지어 안무를 창작하기도 한다.

운동 강도는 중급반, 고급반을 넘는다.

일반 회원반은 양이 안찬다.

살살 지도자 과정을 넘본다. 그리고

도전한다. 해보니...

운동 강도가 딱 좋다. 운동하는 것 같다.


지도자 과정은 수업료가 만만치 않아

운동만 하고 끝내기엔 너무 아깝다.

그러니, 기왕이면 자격증에 구미가 당긴다.

도전!

물론 자판기에 동전 넣음 나오듯 자격증이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취미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니 당연하다.


그렇게

자격증이 하나, 둘...

아마가 프로 되다.



대학교 제출용 이력서 외에 운동 지도자용 이력서가 추가되었다.

전혀 제출처가 다른 두개의 이력서!

영어 말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잡(job)을 갖게 될 줄이야.

영광이고 축복이다.

어느새 운동 지도자 (fitness instructor)를 시작한 지 15년 차라니...

대학 강의는 딱 20년만 하기로 목표를 세웠는데 그것도 목표를 다 채웠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렇게 원했던 책도 한 권 썼다.

20년 강의에 종지부를 찍으면 좋아하는 운동만 하면서 룰루랄라 놀작정이었다. 작정은 작정대로 되지 않았다.

내 몸 안에 흐르는 열정, 도전 유전자가 비웃고 있다.

20년 강의하면서, 운동하면서 외면했던 유전자가 심통을 부렸고,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심통에 불을 붙였다.


코로나가 불 불인 유전자.

바로 '글쓰기 유전자'다.



(코로나를 희화한 모습. 사진출처:Robinㅡfrom Canada)


'글 쓰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라고 느낀건,

칭찬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글짓기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쓴 글을 극찬하셨다. 중학교 1학년이 '만끽'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고 글에 썼는지 감탄스러우시다는 것이 극찬의 이유다.

그 이후 나는 '만끽'이란 단어를 정말 좋아하고 많이 쓴다.

칭찬을 받았던 나의 글쓰기는 쓸 때마다 솜씨가 늘었고, 백일장에서 각종 상장으로 칭찬을 확신시켜줬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게,

신나는 일, 좀 잘하는 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게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중학교 때쯤인 것 같다.

읽기가 아닌 독해력을 갖게 되면서...


회초리보다 더

반성의 효과가 있는 힘을 알게 해준

엄마의 편지!


간혹 감동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때론 쪽지를 건네주신 엄마, 지금도 그 서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글쓰기 유전자는 어쩌면 내 몸에, 내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있었던 엄마의 유전자 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운동강사의 일이 중단됐다.

아이를 낳기 전후를 빼고는 운동을 쉬어본 적이 없는 데.

설마 잠깐이겠지 했는데.

몹쓸 녀석!


20년 동안 서서 강의하고 15년 동안 운동했으니

이제 앉으라는 계시인가? 했는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으니

이제 그만 쉬고 싶은데...


어느새 누군가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다.

운동을 못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를 좋아한다. 전공을 하면서 드라마를 쓰고 싶은 욕심도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바쁜일상...꿈만 꾸던 드라마...그런데 코로나가 또 그 욕구를 건드린다. 앉아만 있으라니 도전이라는 녀석이 꿈틀거린다.

마침내,

서있고 달리느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드라마 공모전에도 응모를 했다.

물론 주제는 누군가를 위한 응원이었다. 응원의 모티브가 없었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른 글 쓰기도 바빴기 때문에...


MBC, KBS 16부작 각각두 편, 4부작 한편, 모두 세편을 제출했다. 3월부터 5월사이에 시작과 끝이났다. 결과에 관계없이 제출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열정이 뿜어 나오는지...

응원의 힘이다.




코로나가 심해질수록 위로와 용기를 주는 글을 더 쓰게 됐다.

내 글을 보고 희망을 갖게 됐다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감사 댓글들은 내게 보람이고 행복이었다.

매일매일 쉬지 않고 응원의 글을 썼다.

글을 쓸수록 코로나가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이!

마치 20여 년 강의한 강사처럼 그렇게,

20여 년 된 작가처럼...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막상 나는 기를 쓰고 되려는 수식어가 아닌데 말이다.

글쓰기만도 바쁘다 보니,

작가 입문을 할 수 있는 많은 플랫폼이 있다고는

하는데 신경쓸 수 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브런치를 만났다.

브런치라는 느낌이 좋았다.

여행 매니아는 다 좋아하는 단어 아닌가.


좋은 느낌 잊을새라,

작정하고 브런치 문을 열었다..


브런치도 내게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작가의 서랍이 생겼다.





''무슨 일 하시나요?''라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그냥 이거 저거 많이 해요.''


상황에 따라 교수, 강사, 기자, 안무가, 번역가...라고 답을

했는데,


왠지 이젠

'이거, 저거 다한다'가 아니고,

어쩌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 몸안에 흐르던

그 유전자, '글쓰기 유전자' 외면했던 미안함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코로나로 추가된 수식어로!


'' 저 작가예요.''


라고...


모두 다 힘든 지금 누군가를 위해

글로 응원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귀찮고 하기 싫었던 재활용 버리는 일이

마스크만 안 함 구시렁거리지 않을 것 같다.


일상을 감사하게 해 준 시간...

내가 글을 쓰게 해 준

코로나!


너무 오래

마스크 쓰고 말을 아끼고,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평범함에 감사하며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


그리고

니가 만들어 준

'작가'라는 수식어로 열심히

응원과 위로의 글을 쓸 테니...


이제 그만 벌주고

제발 좀 가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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