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을 했다. 들은 바로는 밖에서는 퇴직을 하면 보통 마지막 직위를 그대로 부른단다. 홍 씨니 홍 지점장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홍 지점장은 언젠가 아들과 같이 사업을 해보겠다며 자신을 '대표'라고 불러달란다. 우연히 이름이 끝자가 '표'여서 '홍표'도재밌다. 그 외에는 상황에 따라 호칭이 다양하다.
부부끼리 부르는 호칭은 각각 다르다. 신혼 때 '자기'는 아이를 낳으면 아이 아빠로 바뀌기도 하고, 흰머리가 생겨도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니...
우리 부부는 홍표가 처음부터 '여보'라고 불러달라는 요청에 의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살다 보니 '여보'가 가만히 있질 않는다.
보통 땐, 여보,
아쉬울 땐, 콧소리 추가 여보~~~ㅇ,
살짝 뭐가 스물 스믈 올라올 땐, 여봇!
대놓고 확 올라올 땐, ㅇ표!
분노 조절이 안될 땐, 야!ㅋㅋ
홍표 님의 종교적인 호칭은 '집사'지만 모범적인 교인은
아니므로 우리 스스로 '잡사'라고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니 내겐 신실한 집사님이다.
같이 산지 10년, 20년, 30년을 바라보니,
집사 남편이 최고인 거 같다.
퇴직하면 다 해준다더니 정말
다해준다. 요리까지!
게다가 유머 집사니, 더 최고다.
집사님은 웃겨도 너~~~ 무 웃긴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집이랑 같은 라인에 사는 집 아이가 타 있었다. 8년 전쯤, 첨 봤을 때 꼬마였으니 고등학생이란다. 녀석이 꾸벅 인사를 한다.
''세상에 많이 컸네. 엄마, 아빠가 다 크니 볼 때마다 엄청나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은 나와 집사님이
작으니, 키가 크지 않다.
집사님이 뭐라뭐라 중얼거린다.
''그러게... 크네. 에휴 아들한테 미안해서ㅠ
아버지가 밭을 바꿔야 한다 했을 때 바꿨어야 했는데...''
밭을 바꿔야 한다?
(나이아가라폭포:토론토뷰,아들이 힐링하시라 보낸 사진)
우리 집, (친정집)에서는 나만 키가 작다.
홍 집사님 집은 다 작다.
결혼 전 내가 꼽은 결혼 상대 비호감 3종 세트는 이랬다.
첫째, 내가 작으니까 키 180 이하
둘째, 무뚝뚝한시골 출신
셋째, 공무원, 은행원, 교사 (착한 모범생)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친구들은 물론 지인들도 다 안다.
누가 그랬던가~~~ 입방정 떨지 말라고 ㅋㅋㅋ
3종 세트를 피하긴ㅠ
비호감 3종세트는 호감 3종으로 변신!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집사님은 딱 3종 세트 집성목!
작은 키에, 시골사람에, 은행원!
이건 모, 억지로 만들라고 해도 힘든 조합이
한방에 딱!
'눈에 콩 꺼풀이 씌웠다'의 결정체이자 산증인이 된 나!
콩 꺼풀의 정체는...
열개 중 열개가 유머 유전자를 자랑하는 우리 집 가족.
다 웃기고 다 개그맨이다.
말없는 남동생까지 진지하게슬며시 웃긴다.
어릴 때부터 아빠 딸랑이였던 나는 눈을 뜨면서 잠들 때까지 웃겨주는 아빠가 너무 멋졌다.
아빠 이후 본 눈물 나게 웃기는 사람,
나의 남편 '홍 집사님'
웃지도 않고 웃기는
집사님의 유머에 훌러덩 넘어갔다.
웃다 보니 어느새 집사님 집에 인사를 가야 하는,
꽤 진도가 나간 어느 날이 오고야 말았다.
( 새우 감바스 by 홍집사님)
결혼 얘기가 오고 가니 씌워졌던 콩 꺼풀이,
벗겨졌다, 씌워졌다... 헷갈린다.
안 그래도 싱숭생숭 한데...
암튼 집사님 집에 언제 인사를 갈 건지 등등 대화중,
집사님이 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전기도 밝게 해 놓으시고요...
자...작아요.''
'전기를 밝게 해 놓으라고?
뭐야 깡촌인가 봐. 어쩌면 좋아ㅠ '작아요'는 또 몬 소리!'
콩 꺼풀이 확 벗겨지는 찰나에 한 술 더 뜨는 집사님!
''아버지가 데리고 오지 말라는데?''
''뭔 소리야?''
''아니 집 좀 환하게 해노시라 하려고 전화드렸더니, 여자가 크냐고 물으셔서 작다 했더니... 그럼 데리고 오지 말라고...''
안 그래도 심난한데 불을 지르니 어이가 없어 눈을 부라리며,
''왜?''
''우리 집안이 씨가 작으니까,
'밭을 바꿔야 한다' 하시는 거지.''
''아니 진짜 웃긴다. 씨가 작으면 일단 밭한테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냐?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흥, 쳇!''
''아니~~~ 아버지는 무조건 밭을 바꿔야 한다는 거지.''
밭을 바꿔야 한다던 시아버님...
내 사진을 보시고는 눈에 총기가 있다고 데리고 오라고, 좋아하셨다는 아버님... 기분 상했던 나의 눈에 끊임없이 콩 꺼풀을 씌운 집사님...
아마도 밭을 바꿔야 한단 아버님의 미끼를 순진한 내가
덥석 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집사님 집에 낚인 후...
결혼하기 전부터 시아버님은 나를 총애하셨다.아마도,
6남매를 두신 아버님은 막내며느리도 못보고 돌아가실까 걱정이셨던 듯...
지인들과 기분 좋은 식사 자리다.
''나를 그렇게 웃기는 사람은 첨 봤어요. 비호감 3종 세트는 훌러덩 잊어버리고 웃다가 결혼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