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전공이지만 보통 처음 강의의 시작은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강의는 문제가 없지만 뭔가 의무감이랄까.
외국 냄새라도 맡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여름방학 랭귀지 코스를 선택한다. 영어에 대한 관심보다는 'Teaching method, skill'(강의기법)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어디로 갈 것이냐.
처음에 생각했던 미국하고는 뭔가 인연이 아니었는지, 운명의 화살은 캐나다로 향했다.
랭귀지프로그램을 선택한 곳은 빅토리아 주립대학(UVIC)이었고, 그 곳에서 친절한 Robbie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랭귀지가 끝날 즈음 홍표(남편의 이름이 ㅡ홍ㅇ표, 닉네임 홍대표, 의 약어)와 아들이 캐나다로 와서 함께 여행을 했다.
해외여행에 거부감을 가졌던 시골 출신 홍표는 빅토리아에 홀딱 반한다.
일주일밖에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홍표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캐나다.
어느 해, 홍표가 직장에서 고과를 잘 받은 덕에 주어진 유급휴가 1년.
그 해 여름 한 달 동안 가족 여행을 했다.
캐나다 서부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출발, 록키, 중부 온타리오를 지나, 동부 퀘벡, 저 멀리 PEI 아일랜드까지 대륙횡단을 했다.
꿈만 같은 여행이었다.
그때 아들 나이 아홉 살 때이다. 홍가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듯하다.
캐나다는,
대자연을 축복받은 아름다운 나라,
사람들은,
친절하고 마음에 여유가있는 사람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뻔했는데, 역시 인연이 아닌지 계획이 틀어졌다. 어릴 때 캐나다를 두 번이나 여행 한 아들은, '미국 대신 캐나다로 가겠냐는 나의 제안'에 주저 없이 동의했고,
중1 때 캐나다행유학길을 택했다.
아들의 학교는 빅토리아에 있는 공립학교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봤던 곳이 나을 듯하고, 유학생활에 방해가 될까 봐 한국사람이 적은, 보안이 잘 돼있고 사고 확률도 낮은 시골, 빅토리아를 택한 것이다. 홈스테이도 캐나다인 가정을 선택했다. 아이가 셋 있는 젊은 부부, 프랭크(Frank) 집이다.
캐나다의 중학교 수업은 정규시간이 짧기 때문에 방과 후 여가시간이 엄청 많다.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마냥 놀릴 수많은 없다.
아들이 영어를 마스터하는 게 우선 이었기 때문에 나는
튜터를 알아보았고, 역시 친절한 로비로부터 튜터를 소개받는다.
보통 아이가 어릴 때 유학을 가면, 유학원에서 제공하는 정착민 서비스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당시에 그 비용은 꽤 비쌌다. 아들의 경우, 유학 준비를 모두 내가 했기 때문에, 방학을 이용해 나는 아들에게 정착 적응을 서포트하기 위해 함께 떠났다.버스 타기, 물건 사기, 은행 이용, 비상시 등 제반사항을 연습시켰다.
다시 만나게 된 로비는 여전히 친절했고, 처음에 만날 기회가 없었던 그의 아내와 딸도 로비 못지않게 친절했다.
어는 날 오후, 로비가 소개한 아들의 튜터, 로빈(Robin)을 만나기 위해 로비와 함께 로빈네 집으로 향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운명적인 만남
Robin과 Diana.
로비로부터 소개를 받은 두 중년 부인로빈과 다이애나.
로비는 내게 두 여인을 각각 로빈과 다이애나라고 소개를 하고, 로빈은 내게 다이애나를 'my husband'라고 소개한다.
'husband... 남편?'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솔로인 아줌마 둘이 같이 사나? 아님 농담인가?'하고 흘려버렸다.
아니 흘려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분이 결혼식은 물론 혼인신고를 정식으로 한 '합법적인 부부'라는 사실을 안건 처음 소개를 받고 얼마 후이다.
로비도 사전에 내게 얘기하지 않았다. 동양인인 내가 혹시 충격을 받을까 봐, 아니면 따로 귀띔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어서... 그건 모르겠다. 나 또한 아들에게도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았고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알게 되었고, 그들과 가족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한 것 같다.
그 자체가 아닌 그들의 상황을...
로빈과 다이애나는, 일반적인 동성연애자 하고는 전혀 다르다. 스토리의 시작은 이렇다.
로빈과 다이애나, 두 가족은 이미 알고 지낸 지 오래다.
어느 날 두 가족이 함께 여행 중 로빈과 다이애나는 서로 '함께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고 한다. 물론 두 가정사 이혼 직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양쪽 남편들은 모두 '워크홀릭'에 빠진 일중독자들이고, 남편과 아빠의 역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를 알게 해주고 싶었던 두 여인은 각각 이혼을 하고,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다. 25년이나 결혼 생활을 했던 그들의 새로운 결정을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이해를 했고, 심지어 결혼식까지 양쪽의 자제들이 추진을 했다고 하니...
이건 뭐, 그야말로 소설로도 쓰기 힘든 진기한 일이 아닌가!
로빈은 (UVIC) 빅토리아 주립대학 교수직을 은퇴하셨고, 다이애나는 간호사로 퇴직하셨다.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출가를 했고, 독립해서 각자 잘 살고 있다. 로빈의 전 남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였고 현재 로빈이 살고 있는 집은 그가 설계하고 지은 집이다.
빅토리아는 직장을 은퇴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노년층 거주자가 많은 지역이다. 가까이에 아름다운 해변과 푸르른 숲과 공원, 산이 있다. 특히 로빈이 사는 타운은 더 평화롭고 아름답다.
(평화로운 해변. 사진:까칠)
시골인 빅토리아에 13살 아들을 뚝 떨어뜨리고 오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때, 로빈과 다이애나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그들은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 로빈은 아들이 지내게 될 홈스테이를 방문하여 자신의 아들을 맡기듯이 신신당부를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네 터줏대감이 한 마디 거들어 주는 건 천군 마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홈스테이에 있으면서 아들은 주말에 자주 로빈네 집에서 지냈다. 튜터인 로빈은 아들을 친손주처럼 이뻐했고 다이애나는 손수 만든 빵과 피자 등 홈메이드 음식을 아들에게 해 주었다.
아내인 로빈은 writer, editor, tutor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다이애나는 정원을 관리하는 gardening, cooking 등을 주로 담당한다.
(다이아나의 홈메이드 빵,피자.사진:까칠)
당시에 미성년인 유학생은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가디언(GUARDIAN)을 지정했어야 했는데, 가디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아들을 이뻐한 로빈은 무료로 아들의 가디언이 돼주셨다. 아들을 두고 홀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로빈과 다이애나를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들이 입학한 하이스쿨은 방학이 되면 기숙사를 비워줘야 하는 시스템이다. 긴 여름방학엔 당연히 한국에 부모품으로 오지만, 2~3주밖에 안 되는 봄방학은 대략 난감이다. 아들에겐 갈 곳이 있었다.
로빈과 다이애나의 집이다.
로빈은 자신의 집을 '아들의 캐네디언 집'이라고 칭하며 아들과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 마음은 늘 내 가슴속에 감사함으로 남아 있다.
중1 때부터 대학을 갈 때까지 아들은 그렇게 로빈과 다이애나와 함께 성장했다. 아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혹 자고 올 일이 생기면, 친구 집 연락처를 챙기는 로빈.
내가 할 일을 다 해주신 로빈. 엄마가 영어선생이라고 다 성공하라는 법 절대 없는 홀로 유학생활.
아들은 무탈하게 사춘기를 잘 보냈고, 다섯 개의 상위권 대학에 모두 합격, 그중 가장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로빈과 다이애나의 만남이 없었다면 아마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는... 자신이 없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때 로빈은 장문의 이메일로 소식을 전했고 아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부지런히 사진으로업데이트해주셨다.
마치 아들이 옆에 있는 것처럼...
태어난 지 3일 만에로빈 집에 온 강아지 에리스(Aries)...
에리스는 아들과 함께 커갔고 함께 해변을 거닐었고 푸른 숲 속을 함께 산책했다. 아들이 성인이 되는 동안 에리스도 나이를 먹었다. 2019년 에리스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슬픈 메일이 왔다.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로빈과 다이애나, 에리스 그리고 고양이, 나비는 우리 가족에겐 또 하나의 가족이다. 로빈은 우리 가족에게 늘 로빈과 다이애나가 있는 캐네디언 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멀리 떨어져 있을 뿐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로빈과 다이애나.
로빈은 천사다. 내 인생에서 로빈 같은 품성은 본 적이 없다.
지혜롭고, 인자하고, 관대하고, 신중하고, 유머까지 겸비한 거의 완벽한 성품을 지닌 로빈.
살짝 급하고 직선적인 다이애나의 톡톡 튀는 부분도 다 감싸는 로빈.
캐나다에서 몇 안 되는 공식 동성커플, 로빈과 다이애나.
영어선생이지만 보수성향을 가진 나...
기독교적 입장에서 주장하는 동성연애 반대론에 일부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로빈과 다이애나는 동성커플이기 이전에 남편과 아이가 있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던 아내이고 엄마였다. 한국에서도 여자들이 모이면 '남편도 애도 다 귀찮고 여자끼리 살았으면 좋겠다. 여자는 뭘 해도 혼자 먹고 산다.' 등의 수다를 떤다. 물론 로빈과 다이애나는 그냥 아줌마끼리 사는 걸 넘어서 부부의 길을 선택했으니차원은 다르다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과 인연을 맺고 가족이라는 표현을 쓴 지 어언 20년 동안 그들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