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책쓸시간이 어딨어!

엄마 보러 오기도 힘들어 죽겠는데ㅠ

by 이작가야

아침부터 투덜투덜, 중얼중얼거리며 소시지를 부친다.

계란말이를 한다. 시중에서 파는 냉동 동그랑 땡을 부친다.

소시지, 계란말이, 냉동 동그랑 땡까지 세 가지다.

도시락 반찬통 칸이 여섯 칸이나 된다.

세 칸이 남는다.

나머지 세 칸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들어 준, 주로 손 많이 가는 정성 반찬들로 채운다.

내가 만든 건 달랑 세 가지, 나머지는 남이 했는데,

마치 내가 다 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 도시락을 싸는 중이다.




거의 2주에 한번 엄마한테 간다. 종로에서 부천까지 차가 엄청 막히면, 오고 가고 하루 종일 걸린다. 운전은 홍 서방(남편)이 하는 데, 짜증은 내가 낸다.


''차가 왜 이렇게 막혀! 딴 길로 갈걸 그랬나?''


얼굴에 그냥 '나착해'라고 쓰여있는 홍 서방의 말이다.

'여기 막히면 다 막히는 거야. 눈 감고 자. 도착하면 깨워줄께.''




병실 문을 여니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딸만큼 이뻐하는 홍 서방 손도 덥석 잡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어이구, 얼굴 잊어 먹겠어. 맨날 그렇게 바빠?''


거의 이주에 한번 가도 엄마의 첫마디는 똑같다.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나는 또 생색을 낸다.


''아니 어떻게 더 자주와?''


차가 막혀 짜증이 난데다,

한쪽 귀를 잘 못 들으시니 내 말이 짧다.

이어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간병인이 덜렁댄다, 당신은 안 보고 쓸데없이 돌아다닌다, 마주 보고 있는 할망구가 시끄럽다 등등.


잘 듣지도 못하시면서 할망구가 시끄럽다니...




엄마의 일장연설이 끝나면 내 차례다.

'이주에 한번 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엄마가 젤 잘 보여야 할 사람은 간병인이다,

들리지도 않는다면서 시끄럽긴 뭐가 시끄럽냐 등등...'


엄마와 내가 만날 때마다 치르는 일종의 개회사, 답사다.


식순에 의해 도시락을 꺼내 밥상을 차려드린다.

내게 까칠 유전자를 몰빵한 김여사, 원조 까칠이다.


''이거 이거는 당신이 했을 거고, 이건...''

''당연하지. 내가 장아찌를 언제 해.

왜, 맛없어? 괜찮던데?''


보통 엄마들의 답은 이렇다.

'맛있는데 좀 짜네, 내입에는 좀 아니네,

그럭저럭 먹을만하네,

맛은 없어도 건강한 맛이네...'

까칠 김여사의 답은 이렇다.


''냉장고 자리만 차지해요. 갈 때 갖고 가셔.''




까칠 답에 뾰로통 나온 내입을, 한방에 더 나오게 만드는 김여사.


''아무리 바빠도 책 한 권은 써야지... 언제나 쓰시나''


글쓰기도, 읽기도 좋아하는 엄마는 딸이 쓴 책을 보고 싶어 하신다. 오래 강의를 했으니 관련된 책이라도 쓰길 원하신 거다.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책은 무슨?''

''먹고 마시는 시간 줄여서 쓰면 되지.''


엄마 말이 맞다. 먹고 마시는 시간 줄이면 책은 한 권 아니라 열 권도 쓸 수 있다. 엄마는 내가 특히 마시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걸 알고 계신다. 정곡을 찔리니 심통이 난다.

갑자기 엄마한테 화살을 돌린다.


''엄마 보러 오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언제 책을 쓰라고!''


엄마는 못 들은 척하신다. 분명히 들은 것 같은데,

당신이 대답하기 곤란해지면 늘 그러신다...

그리고 나는 또 엄마 보러 온다는 생색을 낸다.

입에서 제일 빨리 나오는 말,

'마음에 없는 말'이다.

어찌나 방정맞게 툭 나오는지...


(계곡, 호수, 강, 바다... 물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닮아...

나는 물을 너~~~ 무 좋아한다.)



2015년 1월 1일 까치까치설날 아침...

엄마가... 눈을 감으셨다.

주무시다 돌아가셨으니 감사한 일이다.

다들 호상이라는데,

'상'인데 '호'가 적합한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3개월 동안 멍을 때린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다.


....


드디어 책을 쓰기 시작한다.

20여 년 동안 영어 강의를 한 나다.

자다가도 강의할 수 있다.

머리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2016년 책이 세상에 나온다.


'라면 영어'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겐 너무나 달라진 세상이다.

엄마가 안 계신 세상...


앉아서 책만 쓴 것도 아니니,

집필에서 인쇄까지 사실 몇 달도 안 걸렸다.


10년이 넘게 엄마가 책, 책. 책 하셨는데,

그 쉬운 걸 안 해드렸다.


왜 자식들은 부모가 떠나고 나서야 철이 들까...






엄마한테 미안해서 말도 못 했는데,

어느 날 납골당에 가보니...

앙증맞게 축소해서 예쁘게 코팅된

책 겉표지가,

엄마 집 문 앞에 명패처럼

붙어있다.

속 깊고 착한 남동생이 그리 한 것이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도 가끔은

다 그런 건 아닌 가보다.


''엄마,

이쁜 엄마, 멋진 엄마, 까칠엄마

딸이어서

자랑스럽다는

한 번 못한 것도

죄송하고,

못한 것만 생각이 나...


엄마,

엄만 내맘 다 알지...엄마니까...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