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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Feb 11. 2022

고용이 창출되는
"장애인 탈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종사자의 입장에서 보는 '탈시설'



장애인은 '탈시설'을 통해 이들의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며,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지역사회는 이들의' 탈시설'을 통해 "고용창출"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비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한다.

현재 정부는 탈시설을 목표로 여러 가지 '사회서비스원'을 지원하고 있으나, 그 속도는 지지부진한 면이 많다.     

일단,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편입되는 장애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단지 ‘불편하다’를 벗어나 현재의 사회적인 분위기(경쟁과 이기주의)에서는 ‘혐오’까지 조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는 탈시설을 하기까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인프라가 구성되어야 하지만, 정작 탈시설을 외치는 사람은 '장애인'과 '일부 인권단체'일 뿐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하다.     


세 번째는 탈시설을 가장 먼저 외치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 가장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사'인데, 이들 역시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탈시설을 전면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들끼리 살면 그들도 편할 테고, 우리도 편한데 왜 탈시설을 해???     


이 질문에 역으로 물어보고 싶다. 왜 장애인들은 그들끼리 살아야 해???라고 말이다.

현재 사회복지시설은 시설의 사유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고 이것에 대한 비리 등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시설의 사유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관심과 지속적인 감찰인데, 사실 비장애인인 우리는 누구도 장애인의 삶과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이 부족하다.


또한 이들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언아더(an other)"의 영역으로 비장애인과 구분되어  생활하면서 그들의 '폐쇄성', '격리성'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다 달았고, 그러므로 그들에게 인권적인 침해나 더 나아가 학대의 가능성이 있어도 외부에서는 쉽게 알 수 없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적게 남아 장애인 거주시설의 심각한 문제점인 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에 탈시설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들이 지역사회로 나아가 '지역사회서비스를 오픈된 환경'에서 받으며 생활하고, '우리의 이웃''우리의 친구'가 되어있다면 이러한 문제점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적인 면에서도 탈시설은 이들을 '인간 존엄'의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 필요한 수순이다. 

너는 나와 다르고, 불편한 존재니 따로 떨어져 살아가!라는 인식은 이들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는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는 말이다. 

장애인 중의 89% 정도는 중도장애인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혐오"의 인식, 즉 '노인 혐오' '어린이 혐오' 등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 된다. 우리는 내가 지금 싫다는 이유로' 노 키즈 존'을 만들고, 노인들의 발언을 '꼰대'라 지칭하며 비하해버린다. 그러나 우리 역시 어린이였고, 앞으로 노인이 되어간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란 영원히 나와 다른 별개의 영역일 수 없다는 것에서 인식의 틀을 넓혀 나가야 한다.  


탈시설은 우리 모두에게 유리하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을 돌봐줘야 하고, 배려와 양보만 해 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뒤집어 보면, 이런 장애인의 특성상 비장애인에게 100%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즉 장애인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의 만성적인 문제인 '고용의 창출'이 가능할 수도 있다


유럽의 사회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을 예로 들어 보겠다.

현재 그곳은 장애인의 시설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장애인은 그저 지역사회의 일부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장애인들은 '혐오'의 눈치를 받거나 '차별의 불이익'을 겪지 않는다.

그것은 장애인으로 인한 고용창출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즉 장애인이 불편한 존재, 도와줘야 하는 존재에서, 나에게 "잡(job)"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이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장애인 한 명으로 인해 발생되는 전문영역이 56개가 생겨나는 그야말로 장애인 복지의 천국이다. 전문영역도 세분화되어 있어 이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복지 서비스를 만들고, 실천하고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그저 인권 인권만을 외쳐서는 지금 대한 만국에서 이들의 인권에 힘을 실어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도 사회가 치열하게 냉혹하고 경쟁을 이끌고 팍팍한 현실에서, 나의 인권조차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들의 인권을 발 벗고 나서서 대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져 누릴 시간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서 고용이 창출되고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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