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답답해 보였다. 하루 종일 누워서 기저귀에 대소변을 해결하고, 밥도 간식도 ‘입안’에 ‘숟가락’을 넣어줘야 먹을 수 있는 삶이란....
방 밖을 나갈 때는 ‘물리치료실’을 가거나, 아파서 ‘병원’을 갈 때뿐인 ‘중증장애인’을 나는 돌보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마인드로 “얼마나 힘들까?”“얼마나 답답할까?”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케어’하고 돌보고, 의사소통하였다. (지적장애에 지체장애까지 있는 그들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자세히 눈여겨 살펴보면 그들이 경험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보인다.
‘지도원’이 교대할 때 그들만의 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보통은 원하는 것(기저귀 교체, 음료 제공, 체위변경)을 이제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칭얼” 거린다든지, 그중에 ‘인지능력’이 있는 친구는 “눈빛 인사”를 해 준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되면, 나의 경우는 ‘나이’ 순으로 ‘식사지원’을 시작하는 데, 늘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옆에 기어 와서 소리를 “으으응~~”낸다. 꼭 “나도 먼저 먹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한 친구는 손으로 눈을 자꾸 찌른다. 그래서 “눈병”이 자꾸 생겨 안과를 주기적으로 가야 한다. 지도원이 “문제행동”이라고 일컫는 그 행동이 그 친구에게는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듯이 하는 놀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눈을 찌르면 눈에 색색가지 문양들이 나타나고, 사물이 요리조리 나눠져 보이기도 한다. 눈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벗어나 생각하면 그 만의 “놀이”이자 “시청”이다.
나는 삼면이 거울로 되어있는 ‘만화경’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색종이를 잘게 잘라 넣어서, 여러 ‘색색가지 모양’의 것들이 ‘다양한 문양’으로 펼쳐지는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푸푸” ~ ‘더부래기’를 하는 친구가 있다. ‘더부래기’는 보통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아이들이 비가 오기 전에 한다고 한다. ‘더부래기’ 소리는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그 박자와 길이도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그 친구는 ‘더부래기’ 소리로 ‘비트박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에게 “그들의 방‘은 ’ 우주‘고, ’ 지구‘고, ’ 나라‘이며, ’ 지역사회‘이다.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 “필요”와 “쓸모”를 따지게 되고 “갑”과 “을"이 존재하게 된다. ’ 장애인‘의 시각으로 ’ 비장애' 인은‘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그들에게 우리는 참 열심히도 줄을 서서 ’ 밥풀‘을 이고 지고 나르는 ’ 개미‘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