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하는사회복지사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생활지도원으로 처음 입사하고 난 후 나의 직책은 ”엄마“였다.
사회복지시설의 생활지도원(줄여서 지도원)은 ”지도원“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있음에도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장’이나 ‘사무국장’이 나를 찾을 때나, 지도원들끼리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란 호칭은 이용인에게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의 의미가 크겠지만, 공적인 업무 부분에서 “엄마”라고 지칭하는 것이 과연 ‘이용인’에게도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다.
먼저, ‘엄마니까 ‘라고 시작하는 업무에는, 역할 이상의 무한한 기대감이 있다.
가정에서의 “엄마”는 ”사적 자치“영역까지 포함된 권리가 있지만, 시설에서는 ”엄마“로써의 기대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위 ”딸 같은 며느리“와 같은 표현 같다.
예를 들어 도전적 행동이 있고, 이것이 지속되는 이용인이 있다고 하면, 이 이용인의 ’ 행동통제‘, ’ 행동치료‘, 그리고 ’ 문제 발생 시 책임‘까지 ”그방 엄마“가 져야 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가정에서는 문제행동이 지속되거나,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전문가를 찾아가서 진단을 받고, ’ 행동수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듣는다.
(사례회의나, 개별화 프로그램 등이 존재하지만, 이것은 주로 형식적인 절차로 그치거나, 사고 발생 시 소급되는 자료로 둔다는 인식이 강해서 실상황에서 이용인 지원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시설의 이용인도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문가의 개입을 받거나, 회사 자체의 행정적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도 실질적인 전문가의 지원이나 행정적인 지원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엄마“는 이러한 문제점을 혼자 감당하게 되는 게 일반 적이다.
사회복지사도 전문가이니까 응당 그 행동을 통제하고 지원할 방향을 찾아가야 하지만, ‘아이 하나를 키울 때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그 담당 사회복지사가 그 모든 것을 과연 ”엄마“라는 이유로 혼자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책임까지 감당해야 할까?
엄마의 사적 감정을 끌고 와 ”엄마니까 해결해야지 “, ”엄마니까 책임지는 거야 “ 하는 시각은 이용인의 문제를‘그 방 안에서 일어나는’ 폐쇄적인 것으로 만들어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엄마의 역할을 넘어서 ”사회복지사“ 즉 ”지도원“의 입장으로 시설 측에 전문가의 자문이나 적극적인 대안책을 요청할 때 이용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엄마니까 하는 감정이 공적인 영역으로 투입되면 개인적인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랑하니까 버릇을 고쳐야 한다 “는 명목 아래, 개인적인 방법으로 이용인을 통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목적이 '선의' 였다고 하여 공적 영역에서 ‘사적 자치’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또한 체계적으로 케어를 받고 실행되어야 하는 공적인 단체 생활에서 엄마의 사적 감정은 개인적인 관계 맺기나, 일관성 없는 케어로도 이어지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접하는 장애인 시설의 비윤리적인 사건 사고 아래에도 ‘원장’과 ‘목사’는 ”엄마 아빠“로 불렸다.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그들을 ”내 자식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라는 인식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엄마와 같은 역할이 가지는 ‘따뜻한 온정’없이 ‘물리적인’ 근로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따뜻한 온정에는 ‘사회복지사’라는 ‘공적인 복지마인드’와 ‘인권존중’이라는 ‘인권 감수성’으로 그 역할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라고 불리는 사회복지 업무에서 이용인의 지원은 지도원의 역량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된 인식은 없는지 살펴보고, 사회복지사 자신도 ‘사적 영역’이 아니라는 정확한 인식과 공적인 역할의 한계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일의 공정성을 높이고, 업무의 효용성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가 ”엄마“가 아닌”지도원 선생님“으로 지칭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