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싯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1959년 김춘수시집 <꽃의 소묘> (백자사)
♡시를 들여다 보다가
한번도 꽃을 들여다 보다가 내가 짐승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꽃을 보면 예쁘고 예뻤고 예뻤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이가 떠 오르면 꽃에게 묻지도 않고 꺽고 또 꺽었다. 꽃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예쁜 꽃들이 한움큼으로 모여있으면 기쁨으로 모양을 바꿔 사랑도 예뻐질 것 같았다. 꺽임을 당한 나머지 줄기를 끌어안고 있었을 꽃의 본체를 오늘 보았다.
나는 위험한 짐승이었다. 위험한 마음을 품고 위험한 손을 내밀어 꽃들을 흔들리게 했다. 그들을 눈시울에 젖게 한 후에
나도 운다. 한밤내내 그렇게 울며 돌개바람되어 무지한 바위의 무지에 금을 내고야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