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TV에서 실소를 금치 못할 시추에이션을 보고야 말았다. 검찰의 최고점 소위 검찰총장까지 지내셨던 분이 법집행을
속옷차림으로 막아내고 있었다니 그리고 또 그렇게 행하고
있던 장소가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 낼 일반수용소의 3배나 되는 어찌 보면 특별한 독방이었다. 왕년의 검찰총장께서 법집행을 막아내는 치졸한 방법을 몸소 시전해 보이셨다. 이제 앞으로 저 아무 나한 잡범들도 잡혀 가기 싫으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버티면 된다. 뭐 검찰총장도 그리했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도 그리했으니까... 엄청 씁쓸한 뒷맛이다. 어차피 구치소 안인데 더 이상 버틸 이유가 따로 있을까?
구치소 얘기가 나오니 떠 오르는 옛이야기가 있다. 군에 있을 때 자칫 영창에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정말 군대 영창의
정문 앞까지 갔다가 돌이킨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군대에서 준고참격인 상병시절이었다. 그야말로 부대 안에서 부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던 그런 때였다. 한 겨울에 비교적 막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야간 경계근무를 서게 되었다. 명령지를 보니
근무 조로 편성된 상대는 이제 막 자대배치받고 들어온 지 며칠 안 되는 풋내기 이등병이었다. 전 근무 조와 교대를 마치고 달빛 아래에서 이런저런 신상파악을 위해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는데 이 친구 군생활 하려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대 내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수칙들이 있었는데 아예 준비가 안 되었다. 암송해야 할 규칙들도 있었는데 아직 모른단다. 큰일이었다.
그래서 나름 일주일 동안 함께 할 근무 파트너로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근무 설 때까지 외워와야 할 것들을 숙제로 내주었다. 어렵지 않았고 그저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외울 수 있는 분량이었다.그리고 두 번째 근무 날이었는데 이 친구가 숙제를 안 해왔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못했다고 했다. 가볍게 얼차려를 시전하고 세 번째 근무 날에는 꼭 해오라는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런데 결국 세 번째 근무 날까지도 숙제를 안 해왔다. 이러면 곤란하다. 군생활이 엄청 힘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강도의 얼차려를 근무시간 내내 시전 하며 지도편달의 발길질로 정신을 차리라고 군기를 넣어주었다. 그렇게 한밤중의 두 시간을 보내고 취침으로 들어갔는데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벌어진 아침점호 때 이 친구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친구가 탈영을 했다. 난리가 났다. 혹시 한밤중에 있었던 내 발길질이 탈영의 원인? 그렇다면 나는 꼼짝없이영창행이다. 잔뜩 쫄아서 무거운 침만 꿀꺽 삼키며 눈치만 살피는 길고도 긴 하루였었다. 말로만 듣던 그 악명 높은 군대영창에 나도 가게 되는구나! 이제 정말 힘든 날들의 연속이겠구나! 한숨을 잡아먹은 시간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느린 기차를 잡아 탄 채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반전이 있었다. 이 친구 탈영의 원인이 내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한 근무 후 잠자리에 들어가려는 이 친구를 같은 소대 손 윗 선임이 불러내어 심한 구타와 함께 군용 대검으로 위해를 가했다는 얘기였다. 결국 나 말고 그 친구가 원인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감옥얘기를 늘어놨다. 목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남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사실은 쫄리는 일이었다.
영창의 정문 앞에서 꺾였기에 망정이지 큰일이 될 뻔한 이 일은 <정도와 양심>을 돌아보게 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