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 가!"
부정(父情)이라도 느끼고 싶어 가기 싫음을 억누르며 꾸역꾸역 찾아가 "아버지 저 왔어요" 말하고 바라보면 대뜸
"뭐 하러 왔어?"큰 소리로 막둥이를 움츠리게 하셨던 분.
어린 막둥이를 두고 집을 나가신 엄마를 찾아 이번엔 내가 반강제적으로 아버지가 계신 집을 나가게 되었었다. 집의 재산을 완벽히 차지하게 된 이복누이가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의 핏줄을 어떡하든 떼어놓으려고 수를 쓰게 된 것이었다. 단 한 푼의 재정적인 도움도 없이 아버지의 계신 곳을 떠나 엄마가 계신 곳으로 전격 이동. 이복누이집에서 홀로 계시며 자식들은 그래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까 하여
생신일과 명절날 거르지 않고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었다. 워낙 재정상태가 빈약하고 어린 나이였기에 필요하셨을 용돈은 드리지 못하였지만 엄마가 쥐어 주신 선물 세트나 과일다발정도는 싸 들고 찾아뵈었으니 기특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아버지의 반응은 냉담하시기만 했었다.
남아있는 아버지의 기억이란 것이 딱 두 가지다.
<뭐 하러 왔어> <이제 가>
느낄만한 아버지가 없었다.
그런 나도 아버지로 잘 설 수 있을까? 역시 경험한 바가 없으니 결혼생활 내내 역할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아내를 살피는 일과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들과 가정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 할 그 일들에서 자꾸 흔들렸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늘 물음표로 따라붙었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았었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이미 내 곁에서 멀어진 아버지는 대답 밖이었기에
울며 부르짖는 외침은 공허했다.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시지만 살아계셨어도 여전히 뭐 하러 왔냐며 호통치실 테고 빨리 가라고 역정을 내셨을까?
이 더운 날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나서 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대체 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