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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 Jul 08. 2024

이태원으로 N번째 여행하기

이태원 | 걸으며 생각한 것들



산책을 좋아한다면 오르막은 쥐약이다. 차도 없이 오래 뚜벅이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평탄한 곳을 찾아다니게 된다. 언덕이 있는 곳 중에 좋아하는 곳이 있다면 이태원이다. 비록 주위로 한강진에서부터 경리단길, 해방촌에 이르기까지 죄다 언덕길이지만 이곳을 오래 좋아해 왔고, 그만큼 이태원은 걸어 다니는 맛이 있는 동네다.


이태원 프리덤 - UV (2011)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신드롬적인 노래가 2011년에 나왔고, 그때 나는 아직 이태원이라는 곳을 제대로 알지도 못할 때였지만 지금 봐도 노랫말이 이태원을 너무 잘 나타내준다. 내가 이태원에 가장 자주 가던 때는 7~8년 전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이태원역 앞에는 해밀턴호텔이 터줏대감처럼 우뚝하고, 유행과는 관계없이 자리한 빅사이즈 옷가게와 길거리의 사람들도 변함없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 풍경이 많이 바뀌어왔음을 고려하면, 이태원의 시간은 분명 느리게 간다. 이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안타까운 2년 전의 참사 이후, 이제는 괜히 이태원을 언급하기도 조심스럽다. 이전부터 여러 범죄, 미군,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 등 편견도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이태원은 특유의 자유로운 문화에서 많은 것들을 탄생시켰다. 이제는 너무 흔한 쌀국수, 팟타이를 비롯한 동남아 음식이 이태원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스포츠 펍이나 물담배, 수제맥주 같은 것들 모두 나는 이태원에서 처음 접했다. 몇 년간 이태원에서 경리단길로, 해방촌으로 유행처럼 이어지던 발길은 이태원만이 가진 이색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이태원에 가면 잠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나만의 경험인지 해외여행을 가면 괜히 눈치를 덜 보게 된다. 평소에는 쓰지 않던 선글라스도 한번 써보고, 어울리지 않는 민소매 옷을 입고 허세도 부려본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도 내 모습에 간섭하지 않기에. 이태원에는 외국인도 많은 데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나도 타인의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냉장고만한 크기의 이민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도로를 트랙 삼아 웃통을 벗고 러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태원에 갈 때면 여행지에서처럼 마음이 들뜨는 것은 덤이다.


이태원의 시간은 이미 조금 지나갔지만, 이태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은 여전하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의 저력은 항상 있었다. 다시 또 10년이 지나더라도 이태원은 이 모습 그대로 있으면서 문화 저변에 스며들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태원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




[이태원]

https://www.google.com/maps/d/u/5/edit?mid=1rXjwA8hhLLgF_LNl2dY4-4LULQHmHEE&usp=sharing


이태원은 구석구석 골목마다 특색이 있기에 어디로 향하더라도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이태원에 가면 역에서 내리자마자 거의 자동으로 (다른 약속이 없다면) 4번출구로 나와 블링크안경점이 있는 뒷골목으로 향한다. 4번출구에서 뒤를 돌아 골목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막 도착한 여행지에서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길 좌우로는 세계 각국의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음식과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미소를 건넨다.



골목 중간에는 내 단골 안경점인 블링크안경이 있고, 특별히 안경 구매 계획이 없더라도 한 번씩 들러 안경을 구경하곤 한다.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고 부담 없이 여러 브랜드의 안경을 구경할 수 있는 덕에 조금 멀더라도 꼭 블링크안경을 찾아가게 된다.  


이태원에서 시작된 유행 중 하나가 루프탑 카페, 루프탑 바라고 생각하는데, 이쪽 골목으로도 루프탑 가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루프탑이 아니더라도 테라스 자리가 있는 곳이 많고 그것이 이태원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다.



이태원시장 건물에 도달할 때까지 300 m 정도 되는 이 거리는 특별히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이 평탄하게 이어져 걷기에도 좋다. 골목 안쪽으로 한번 더 들어가면 꽤나 가파른 언덕들이 나오게 되니 참고해야 한다. 이태원시장 건물에 도착해서 큰길로 나오면 횡단보도 앞 작은 공터가 나오게 되며, 이곳에서는 간혹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 같은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터를 지나서도 좌우로 괜찮은 산책로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면 녹사평역, 더 가면 경리단길, 해방촌까지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구 미군기지 담장을 따라 무리 없이 내리막을 즐길 수 있다. 한강 방향으로 쭉 뻗은 이 돌담길은 옆으로 보이는 넓은 도로와 맞물려 서울에서 흔하지 않은 이국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2024.07

© Quasar


|| 걸으며 생각한 것들 || 걷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걸으면 생각이 차오르고, 달리면 생각이 비워지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걸으며 생각한 것들, 그리고 산책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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