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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 Jun 23. 2024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앉아서 생각한 것들



나도 '좋을 때'라는 얘기를 들던 날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어린 나이지만, 분명히 내 삶의 좋을 때는 지나왔다. 어렸을 때는 지금 나이가 되면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러하듯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고, 지금의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며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잘 모르며) 하루 건너 한번 꼴로 처음 해보는 일들이 생긴다.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데 그때는 몰랐다. 한번 공부해 놓으면, 한번 진로를 정하면 그렇게 쭉 잘 살게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 바람과는 반대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직장을 가지고, 또 새로운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뿐 아니다. 얼마 전에는 면허를 딴지 10년이 넘어서 다시 운전을 배웠다. 처음으로 요가원에 등록해보기도 하고, 몇 번의 도전에도 아직 익히지 못한 수영을 끝내 배워보려는 참이다.


지금도 처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처음이라는 것은 도무지 적응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용기가 더 필요해진다. '이만한 나이가 됐는데도 이걸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따위의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어렸을 때만큼 겁 없이 도전하기도 어렵고 이전만큼 빠르게 배우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날이면 걱정으로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어릴 때 다 배워놓는 건데.


그럼에도 이런 설렘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 새로운 시작은 마치 어린 시절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제는 일상에서 재미를 찾기 참 어렵다. 직장에, 벌이에, 또 관계에 매몰되어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다 보면 가끔 내가 가짜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한다. 타인의 꿈에 노역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요가원에서 두리번거리며 매트를 펼치고, 수영장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발을 넣었다 빼며 되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경험을 한다.


새로 시작하는 설렘은 나를 계속 어리게 만들어 줄 것 같다. 나이 먹을수록 몸도 뻣뻣해지고 생각도 딱딱해지는데, 가끔 이렇게 나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자극도 삶에 필요하다. 뻣뻣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멋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유연하고 변화무쌍한 어른이 되고 싶다.




2024.06

© Quasar


|| 앉아서 생각한 것들 || '걸으며 생각한 것들' 사이 쉬어가는 편. 인생은 눕기와 서기 사이에 있는 앉기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걷지 않을 때는 앉아서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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