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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 May 12. 2024

서양검술과 스트릿 댄스

동작대교 남단 | 걸으며 생각한 것들



    한강을 좋아한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강은 서울에 살게 된 지 10년이 지나도 늘 나에게 놀라움을 준다. 한강을 좋아하는 만큼 한강변에도 좋아하는 곳이 많다. 그중 최근 눈에 들어온 곳이 동작대교 남단이다.


    동작대교 남단. 이곳을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번 찾아보았는데, 고유한 지명을 결국 찾지 못했다. 'ㅇㅇ한강공원'과 같이 흔한 이름조차 없는 이곳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다른 공원과 마찬가지로 운동기구는 물론 강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도 있다. 뚝섬이나 반포, 여의도와 비교한다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기에 볕이 덜 들고 공간이 좁은 것은 단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덕분에 한적한 분위기가 난다.


    그 까닭인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봄날의 일요일, 친구들과 동작대교 남단을 산책하다가 서양검술을 수련하는 동호인들을 보게 되었다. 과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람 키만 한 큰 칼을 들고 대련에 매진하는 동호인들의 모습은 정력적이고 우아하고 나아가 이국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 모습을 보기 전에는 우리나라에 서양검술이라는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서양검술을 수련하던 동호인들 맞은편으로 힙합 댄스를 추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수년 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 시리즈에 나오던 댄서들도 있었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자기들 만의 세상에서 물 흐르는 듯한 동작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 또한 너무 자연스럽고 멋졌다. 서양검술 동호인들의 칼 부딪히는 금속성의 굉음 뒤로 평화롭게 춤을 즐기는 풍경은 서로 다른 '이세계'를 보는 듯했다.


    문득 서양검술과 스트릿 댄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런 이색적인 장면은 동작대교 남단이 한적한 곳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북적거리는 광장이었다면, 사람들 틈에서 대련을 하거나 춤을 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머릿속도 너무 빡빡한 날에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 숨 쉴 여유가 있을 때에야 딴생각도 나고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올해 나도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몇 년째 버킷리스트에만 담겨있던 브런치 작가활동을 시작했고, 인생 처음으로 요가원에 등록했다. 시작하는 모든 것들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활동은 항상 또 다른 재밌는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수험공부를 할 때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되고, 운동을 할 때도 회복하는 날이 있어야 근육이 성장하고 효율이 난다. 강남역 한복판에서는 결코 서양검술과 스트릿 댄스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서양 검술을 즐기던 동호인들, 힙합 댄서들(로 추정되는 분들)을 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검색해 보았다. 따로 허락을 받은 적은 없지만 글의 소재가 되어주심에 감사하며 홍보 아닌 홍보(?)를 해본다.


https://www.youtube.com/@arthur53695

https://www.youtube.com/@MVLSHOZINSTUDIO




[동작대교 남단 한강 산책로]

https://www.google.com/maps/d/u/5/edit?mid=1x_gwx6TxLtTalESUfFHH7NKu0VDXx1U&usp=sharing


    현충원으로 잘 알려진 동작역은 서울에서 한강에 가장 가까운 역 중 하나이다. 동작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으로 바로 한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내리막길을 통과해 나오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인적도 드물고 차도 없는, 검술 동호인들과 댄서들을 만날 수 있는 그곳이다. 물론 이곳에서는 그뿐 아니라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는 충분한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

동작역에서 내려오면 보이는 넓은 공터


    공터를 지나 한강 방면으로 나가면, 우리가 흔히 보던 한강공원의 모습이 나온다. 작은 잔디밭, 운동 기구, 따릉이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른 곳보다 동작대교 남단이 특별한 점은 동작대교 위로 올라가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다리 양쪽으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두 카페가 있으며, 특히 서쪽에 있는 노을카페는 너무나 멋진 한강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노을카페 전망대 전경


    동작대교는 자동차, 전철, 사람이 모두 건너는 재밌는 다리이다. 이 때문인지 동작대교 위에는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요새는 결혼 기념 스냅을 찍는 커플을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풍경과 차량이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드문 곳으로 각광을 받는 듯하다.


    또한 동작대교 방면으로 좀 더 걸어가면 서래섬에 다다르게 된다. 서래섬에서부터 반포한강공원은 서울에서도 가장 큰 한강공원 중 하나이므로 가능하다면 서래섬을 지나 반포한강공원까지 나가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곁다리로 한 가지만 더 소개하자면, 동작역 1번 출구에서 한강 반대방향으로 닿는 곳에 '허밍웨이 길‘이 있다. 허밍웨이 길은 반포천을 따라 고속터미널 역 방면의 피천득산책로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동네 주민들이 잘 이용하는 잘 조성된 산책로이다. 다른 지역에서 굳이 찾아오기까지는 조금 심심할 수 있지만 조용하고 오르막내리막이 없어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어르신들도 많이 뵐 수 있고, 가족끼리도 도란도란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2024.05

© Quasar


|| 걸으며 생각한 것들 || 걷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걸으면 생각이 차오르고, 달리면 생각이 비워지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걸으며 생각한 것들, 그리고 산책로를 소개합니다. 직접 걸어본 곳만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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