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kyblue Mar 28.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

1화 : 눈을 닮은 아이

이 글은 세계 명작에 등장하는 공주 이야기를 재해석하여 재미를 곁들인 개인 창작 소설입니다.
기존 공주 이야기의 인물과 스토리라인에 유사점은 있으나 전체 줄거리 및 전달하려는 주제는 전혀 다릅니다.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백설공주 시작합니다.


1화 : 눈을 닮은 아이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왕비는 배에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어 놓고 나지막이 기도했다. 신전 앞에 세워 둔 촛대에 불이 꺼지자 놀란 마음에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사제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사제님, 신께서 저에게 주신 이 아이는 남자아이입니까? 여자아이입니까?”


사제는 왕비의 고운 얼굴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신께서 그대에게 세상을 바꿀 기적의 아이를 내려주겠다 하시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맞이하시게.”


몇 달 후 궁궐 안에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절부절못하며 왕비의 침실 앞을 서성이던 왕은 그제야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를 들어 올린 시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시녀의 손에 들린 아기는 갓 태어난 아기라고 하기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컸고, 피부는 햇빛에 그을린 듯 까무잡잡했으며 무엇보다 머리에 빨간색 털이 부슬부슬 자라 있었다.


“공주님입니다..”


“왕비님! 왕비님! 폐하, 왕비님이 숨을 쉬지 않으십니다!”


그날 왕비는 아기를 낳고 세상을 떴다. 왕은 아내를 잃은 충격에 넋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태어난 아기는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날 그 누구의 품에도 안기지 못했다.


왕비는 죽기 전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눈의 아름다움이 아이에게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뱃속의 아이에게 ‘백설’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


백설 공주가 태어나고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왕의 집무실에 신하들이 모여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르델 왕국에서 벌써 몇 번째 서신이 도착한 지 모르겠소. 정략결혼이 벌써 3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국왕 폐하께서는 왕자와 공주가 만나는 일을 한사코 미루려고만 하시니 이러다 외교적 마찰이 벌어질까 걱정이오.”


“지난번 이민족이 쳐들어 왔을 때 아르델 왕국의 지원병이 없었다면 그날로 우리 왕국은 운명을 달리하였을 것이오. 어찌됐든 정략결혼만 성사시킨다면 왕국이 망하는 길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겠소.”


“국력이 약한 우리 왕국이 살아남는 길은 힘이 강한 나라를 잘 붙드는 겁니다. 국왕께선 왜 정략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지 원..”


“다들 진정하시오. 폐하의 병이 깊으시고 공주님을 생각해서라도 새 왕비님 모시는 게 우선이오.”


이븐 왕국은 힘이 약한 나라였다. 이웃나라 아르델 왕국은 군사력이 잘 조직된 강한 나라였다.


아르델 왕국이 주변에 약한 나라를 정략결혼으로 굴복시켜 차지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무성할 때 아르델 국왕은 이븐 왕국의 왕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고 정략결혼을 제의했다.


아르델 왕국에는 이제 막 두 살이 된 왕자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정략결혼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주변 국가에서는 지리적 요충지인 이븐 왕국의 입지를 탐내서 다른 강대국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이븐 왕국은 부디 왕자가 태어나길 바랐다. 왕비는 아기에게 처해질 운명이 안쓰러워 매일 같이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았다.


—-


몇 달 후 신하들은 아르델 왕국에서 데려 온 여인을 새 왕비로 세웠다. 아르델 왕국 사정에 이해가 깊었고 공주를 잘 보필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새 왕비의 즉위식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허공에 대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왕비, 내가 미안하오. 내가… 당신을 .. 우리 딸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소…”


새 왕비를 눈 앞에 두고 전 부인에게 고해성사를 읊는 듯했다.


“부디 기운을 차리셔요. 제가 옆에서 끝까지 보필하겠나이다..”


“나는 이제 글렀소. 나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짐을 …용서...”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왕은 뜬 눈으로 숨을 거두었다.


왕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하들이 모여 왕위계승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의견을 모았다.


“이븐 왕국은 지금껏 공주가 국왕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 전례가 없소이다. 이렇게 된 이상 공주님의 혼례를 서두르는 수밖에 없소.”


“아니면 주변 이웃 국가에서 왕위 계승에 탈락한 왕자를 양자로 들여오면 어떻겠소. 어린 소년을 데려다가 왕국에서 잘 키워서 왕으로 세우는 방법도 있지 않겠소?”


“그건 정략결혼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오. 국왕께서 이리 일찍 승하하실 줄이야..공주님의 혼사와 왕위 계승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소만..”


신하들은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서로 눈치만 볼뿐이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재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분간 왕비의 대리 통치로 넘기고 상황을 지켜봅시다. 공주님의 정략결혼은 아직 3년도 더 남은 일이니 그때까지 모두가 왕비님을 보필하면서 공주님과 이 나라가 모두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세나.”


왕비는 혼란스러웠다. 아르델 왕국의 성에서 쫓겨나고 다시는 성과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이웃나라의 왕비가 되었고 곧 왕국을 통치하는 자리까지 올랐다.


상상도 못 한 자신의 처지에 온몸이 떨려 잠자리마저 편치 않았다. 며칠을 잠을 설치며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이리저리 맴돌고 있는데 문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왕비는 크게 소리쳤다.


“게 누구냐?”


누군가가 왕비 뒤로 서서히 다가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