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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Mar 30.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4

4화 : 피오나 공주

[지난 줄거리]

백설은 왕비가 일러 준 통나무 집에서 일곱 친구를 만났다. 도나우, 레아, 미뉴에트, 파울, 솔르, 라오스, 시리우스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인데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살고 있었다.

통나무 집에서 일곱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백설은 성 안에 있을 때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약초를 캐러 가던 길에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려는 한 소녀와 마주했다. 백설은 소녀를 말릴 생각에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4화 : 피오나 공주


——


소녀는 잠시 멈칫했다.


백설은 어떻게든 소녀가 뛰어내리는 일을 막아설 생각으로 무작정 아무 질문이나 던졌다.


“왜.. 그런데?”


“궁금하지? 그치? 그러면 이쪽으로 가까이 와 봐. 토끼가 자기 똥 다시 먹는 이유도 알려 주고 더 신기한 것도 알려줄게.”


소녀는 천천히 뒷걸음질했다. 백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녀의 손을 잡고 방향을 틀었다.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소녀를 부축해 낭떠러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백설도 같이 주저앉아 버렸다. 울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거리는 소녀가 안쓰러웠다. 마침 집에서 가져온 쿠키가 떠올라 소녀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토끼는 풀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소화를 잘 못 시킨대. 그래서 풀을 먹은 다음 똥을 싸고, 싼 똥을 다시 먹어야 풀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대. 웃기지? 내 친구 중에 만물박사 라오스라고 있거든. 그 친구가 알려 준 거야.”


죽음을 결심하고 뛰어드는 아이에게 기가 찰 정도로 우스운 질문이었다. 백설은 어쩌면 소녀가 자신의 죽음을 막아 줄 누군가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혹시.. 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고 한 거야?”


순간 소녀의 얼굴에 다시 슬픔이 드리워졌다.


“이 얼굴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소녀는 이븐 왕국 동남쪽에 위치한 피오나 왕국의 공주라고 했다.


공주에게는 두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다. 왕은 남동생을 강한 왕으로 키워내려 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결국 나라를 등지고 도망쳤다.


피오나 왕국은 이븐 왕국처럼 힘이 약한 나라로 정략결혼이 국가의 사활을 결정짓는 중대한 일이었다.


동생을 대신해 모든 걸 짊어진 피오나 공주는 갑작스럽게 정략결혼으로 내몰렸고 선택받기 위해 가혹하리 만큼 엄격한 아름다움의 잣대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고통이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백설은 피오나의 슬픔과 눈물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나 저기 숲 속에 있는 통나무 집에 사는데 놀러 오지 않을래? 재미난 친구들도 많고 같이 놀다 보면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야!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줄게. 요리는 잘 못하지만..”


피오나 공주는 백설을 따라 통나무 집으로 갔다. 친구들 모두 피오나 공주를 기쁘게 맞이했고 오랜만에 사람들과 격 없이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시리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를 뒤늦게 알아챈 백설이 조용히 빠져나와 집 주변 여기저기를 뒤지고 돌아다녔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나무 둥치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리우스가 보였다. 백설은 말없이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 누나야...피오나 공주”


시리우스는 피오나의 남동생이자 피오나 왕국의 왕위계승자였다. 왕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초조함에 쫓겨 아들을 몰아세우기 바빴던 아버지를 참지 못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날 며칠을 걷다가 숲 길 한가운데에서 쓰러졌다. 사냥을 나가던 도나우가 쓰러져 있던 시리우스를 발견해 통나무 집으로 데려왔다.


한동안 친구들과 지내면서 왕국에서 있었던 끔찍한 기억이 흐려져 갈 즈음 통나무 집에 피오나 공주가 찾아온 것이다.


시리우스는 깜짝 놀라 집 밖을 벗어나 또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슬픔으로 얼룩져 있던 피오나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동안 모른 척 묻어두었던 누나를 향한 죄책감이 되살아났다.


“누나..일부러 나 모른 척했어. 다시 성으로 돌아가면 불행할 거 아니까. 누나한테 모두 던지고 온 난 비겁하고 나쁜 애야..”


시리우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기 시작했다. 백설은 시리우스의 등을 몇 번이고 토닥여 주었다.


“너가 정말 짊어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 누나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고 생각될 때 다 갚아주면 되는 거야. 피오나는 결코 널 원망하지 않을 거야.”


백설은 피오나와 시리우스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시리우스와 피오나도 끝까지 서로를 밝히지 않았다.


친구들은 피오나 왕국에 서신을 보내 피오나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숲 길이 위험한데도 한사코 마을까지 내려가서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도나우와 솔르가 마을 어귀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나… 더 이상 목매지 않을 거야. 우리 왕국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찾아내기로 결심했어. 모두들 정말.. 고마워.”


백설은 이 말을 하고 돌아서는 피오나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평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희미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



“첩자들이 찾아온다고?”


피오나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나무 집은 여느 때와 달리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백설의 손에는 왕비로부터 온 서신이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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