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통나무 집 일곱 친구들
[지난 줄거리]
늦은 밤 왕비를 찾아온 낯선 사내는 죽기 전 국왕이 맡긴 편지를 전했다. 왕은 첩자의 소굴이 된 왕국의 현실을 한탄하며 백설을 지켜달라 간절히 부탁했다.
이븐 왕국 신하들은 왕비에게 백설 공주의 정략결혼 준비를 부탁했다. 허나 백설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길은 만만치 않았다. 왕비는 신전에 올랐고 사제에게 확신의 거울을 건네받는다.
2년 앞으로 다가 온 결혼에 앞서 두 사람의 만남을 청하고자 아르델 왕국에서 사신이 찾아왔다. 왕비는 마음이 여린 공주가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고민 끝에 백설을 성 밖으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3화 : 통나무 집 일곱 친구들
백설은 채비를 마치고 아침 일찍 성을 떠났다. 한참을 걷다 보니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 아담한 통나무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통나무 집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공주는 살면서 그렇게 오래 걸어 본 적이 없어 피곤함과 나른함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설은 성에서 보낸 사람들이 파티를 준비한 줄로 알고 일부러 계속 헛기침을 하며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설은 멋쩍게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레 앞으로 당겼다.
“넌 누구냐?”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방에서 튀어나온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백설을 공격할 태세로 서 있었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붙은 백설은 왕비가 그렇게 당부한 걸 하루도 채우지 못한 채 어기고 말았다.
“이븐 왕국의.. 백설 공주.”
통나무 집에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모두 백설과 비슷한 또래였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고 마음이 맞아 서로 함께 다니게 됐다. 통나무 집을 발견해 이곳에 머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쩐지, 창고에 1년은 먹고도 남을 음식이 한가득 있더라 싶었지. 이게 널 위해 준비한 거라니..그런데 너, 정말 이븐 왕국 공주 맞아? 생김새로 봐선 영…”
일곱 아이들 중 가장 몸집이 크고 다부진 도나우가 말했다. 레아와 미뉴에트는 그 말을 듣고 도나우를 째려보았고 레아가 한 마디 거들었다.
“니가 할 소리는 아니지.”
온화한 인상을 가진 파울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 세 사람을 다독이며 말했다.
“쟤들은 만나기만 하면 저래. 그건 그렇고 네 말은 아르델 왕국 왕자와 곧 정략결혼을 해야하는데 어쩌다 보니 몸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거야?”
“응, 내가 별로 예쁘지 않아서 결혼에 문제가 생겼는지도 몰라.”
장난기가 충만한 솔르는 어울리지 않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온 몸 구석구석 백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꼴이 이래서야…그냥 정략결혼을 안 하면 안 돼?”
무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라오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르델 왕국이라고 했지? 거기 정략결혼으로 협박하면서 여러 나라 힘들 게 하기로 유명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야.”
평소에 웃는 일이 드문 시리우스는 턱을 괸 채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백설의 얼굴을 바라 보더니 고개를 살짝 돌려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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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은 통나무집에서 만난 일곱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걸 알게됐다.
도나우는 활을 잘 쏘는 아이였다. 먼 곳에 있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동물도 도나우가 쏜 화살 한 발에 맥을 못추었다.
레아와 미뉴에트는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을 빠삭하게 알았다. 식량으로 먹을 수 있는 풀과 약으로 쓰는 풀, 그리고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독초까지도 정확하게 구별해냈다.
파울은 말재주가 뛰어났다. 도나우가 잡은 사냥감이나 레아와 미뉴에트가 캐 온 풀을 들고 시장에 나가면 꽤 이윤을 많이 남겨 전부 팔아치우고 돌아왔다.
솔르는 처음에 장난기가 많고 가벼운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어디를 가도 솔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라오스는 사람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었다. 아이들이 일 년 넘게 함께 지내며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던 건 다 라오스 덕분이었다.
시리우스는 친구들 앞에서 입을 여는 일은 드물었지만 아름다운 말로 마음을 울리는 시를 잘 지었다.
성 안이 세상의 전부였던 백설 공주는 통나무 집에 있으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은 사람 수만큼 존재함을 깨달았다. 일곱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그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일곱 가지 세상에 머무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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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은 레아, 미뉴에트와 함께 시장에 내다 팔 약초를 캐러 가는 길이었다. 숲길 곳곳에 피어 있는 꽃에 정신이 팔려 구경하다 앞서 가던 레아 일행을 놓쳐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어가 보니 길 막다른 곳에 낭떠러지가 보였고 그곳에 한 소녀가 울면서 절벽아래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잠깐! 뭐하는 거야?”
소녀는 고개를 돌려 백설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낭떠러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그 때 백설이 소리쳤다.
“토끼는 자기가 싼 똥을 다시 주워 먹는대. 왜 그런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