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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Mar 28.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2

2화 : 확신의 거울

[지난 줄거리]

이븐 왕국의 왕비가 공주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왕비는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을 닮은 아이가 되길 바라며 아이에게 백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르델 왕국은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며 백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국의 왕자와 정략결혼을 제의했다. 힘이 약한 이븐 왕국은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만다.

이븐 왕국은 아르델 왕국 출신의 새 왕비를 맞이했다. 얼마 후 병세가 깊었던 왕도 세상을 떠났다. 새 왕비는 어린 백설 공주와 이븐 왕국의 운명을 짊어지고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왕비의 등 뒤에는 낯선 이의 그림자가 …


2화 : 확신의 거울


“게 누구냐?”


“돌아서지 마옵소서. 왕비님을 해하러 온 자가 아닙니다. 저는 국왕께서 승하하시기 전 제게 맡기신 편지를 왕비님께 전달하러 왔습니다.”


크게 놀라 몸이 딱딱하게 굳은 왕비는 그 자리에 서서 낯선 사내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아르델 왕국에서 쫓겨나 죽을 위기에 처한 당신을 왕비로 모신 것은 전부 국왕의 뜻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읽고 흔적도 없이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사방이 왕비님의 적입니다.”


낯선 사내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왕비는 왼쪽 손에 쥐어진 편지를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다.


이리도 중요한 말을 서신으로 전하게 되어 유감이오.
이븐 왕국은 오래전부터 아르델 왕국 사람들로 가득하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팔아먹을지 호시탐탐 노리는 게 신하라는 자들이오.
혹여 내가 먼저 세상을 뜨면 공주와 결혼을 빌미로 아르델 왕국의 첩자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오.
우리 공주를 끝까지 지켜주시오. 공주가 사는 게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오.
그리고 마르다는 항상 당신을 그리워했소.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오.


편지를 다 읽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침대 옆에 있던 호롱불에 편지를 태워 흩날리며 왕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



신하들은 왕비에게 3년 앞으로 다가온 백설 공주의 정략결혼 준비를 부탁했다. 백설 공주를 아르델 왕국에서 흡족해할 만큼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길러내라는 말이었다. 대신들은 아르델 왕국이 정략결혼 상대로 백설 공주를 탐탁지 않게 여길까 무척 두려워했다.


그간 많은 여인들을 봐 왔지만 백설 공주는 참 독특했다. 보기 드문 빨간 색 머리에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색 여자아이로서 지녀야 할 기품이나 매력이 부족했다.


백설 공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은 시녀들이 공주의 외모를 가지고 뒷말을 하는 걸 들었는지 울먹이며 왕비에게 찾아왔다.


“어머니, 제 머리카락이 강아지 털을 닮았는지요? 저는 어머니처럼 길고 고운 머리는 될 수 없는 건지요...”


그렇게 속상한 말을 듣고서도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말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고운 아이라 주변에 아파하거나 힘든 사람이 생기는 걸 견디지 못했다.


왕비는 감정이 앞서는 걸 자제하기 위해 애썼다. 공주를 측은히 여긴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었다. 우선 겉보기에 누가 봐도 공주를 아름답고 예쁘게 여길 만큼 가꾸어 놓는 게 급선무였다. 왕비는 백설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사방으로 찾아 헤맸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얗게 만들려고 매일 같이 백설 공주를 우유로 목욕시켰다. 이것도 잠깐일 뿐 오히려 피부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역한 비린내가 났다.


복슬복슬한 강아지 털처럼 자란 빨간 머리는 오징어 먹물을 가지고 물들였다. 살짝 검은빛을 띄긴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빨간색 머리로 돌아왔다.


달걀처럼 매끈한 얼굴형을 만들려고 얼굴에 붕대를 감아 두고 며칠을 두고 보기도 했지만 두통만 심해질 뿐 조금도 변하는 게 없었다.


시녀들 말로는 이웃 나라에 가면 얼굴에 칼을 대서 눈, 코, 입 모양을 아예 다르게 바꾸어주는 의원이 있으니 수소문을 해 보면 어떠냐고 했다.


백설도 그리 하겠다며 의원이 있는 곳에 보내달라고 했다. 왕비는 아무래도 백설의 얼굴에 칼을 대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



고민 끝에 왕비는 백설을 점지해 주었다던 신전에 올랐다. 사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왕비에게 다가와 손거울을 건넸다.


“이게 무엇입니까?”


“확신의 거울. 답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보게.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에 불안한지 진정 지키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왕비는 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왕비가 신전에서 돌아와 성 앞에 이르자 아르델 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와 말이 보였다.


“왕비님, 아르델 왕국에서 사신이 찾아왔습니다.”


“그 방으로 사신을 안내해주세요.”


아르델 왕국 사신은 왕비를 알현하기 위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사신이 앉는 자리와 왕비가 앉는 자리를 가르는 벽이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아도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사신은 사뭇 당황했지만 평소대로 신하의 예를 다해 인사를 올렸다.


“이븐 왕국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아르델 왕국의 사신 인사드립니다. 이븐 왕국 백설 공주님과 아르델 왕국 윌리엄 왕자님의 정략결혼이 2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윌리엄 왕자님도 올해 열여섯이 되셔서 왕위 계승을 앞두고 있사오니 슬슬 두 분의 만남을 주선하여 부부의 연과 더불어 두 나라의 미래를 함께 꿈꾸어볼 수 있게 하심이 어떠신지요?”


아르델 왕국의 왕위 계승자인 윌리엄 왕자는 여인의 미모를 밝히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시중을 드는 시녀도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여인들만 고집하고 심지어는 희롱을 일삼기까지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공주도 윌리엄 왕자님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외모에 엄격한 아이다 보니 왕자님께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만…”


아르델 사신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 말을 전했고, 윌리엄 왕자는 흔쾌히 허락했다.


백설을 이대로 보냈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왕비는 마음이 여린 백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아르델 왕국 첩자가 사방에 깔려있는 성 안이 가장 위험했다. 왕비는 늦은 밤 백설의 침소로 찾아갔다.


“지금부터 공주는 성을 떠나야 한다. 이븐 왕국 북쪽 숲 어귀에 통나무 집을 마련해 두었으니 거기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어라. 혹시 사람들을 만나도 너가 이븐 왕국의 공주라는 사실은 절대 말하면 아니 된다.”


“어머니, 제가.. 예쁘지 못해서.. 그래서 숨어 있어야 하는 건가요?”


“공주는 세상 누구보다 어여쁘고 아름답다. 다만 너를 지키기 위해 잠시 시간이 필요할 뿐.. 이 거울을 네게 맡기마. 마음이 답답해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들여다보아라.”


백설은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 자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백설 공주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울고 있는 왕비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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