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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Mar 26. 2020

아직은 내리고 싶지 않아

첫 번째 비행 - 2019.0730.2400

 두바이 국제공항을 허브로 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은 가장 부유한 항공사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스폰서십 문구로 Fly Emirates가 익숙할 터이고 나처럼 항덕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가장 큰 여객기인 A380을 최다 보유한 항공사로도 잘 알고 있으리라. 내가 탄 인천발 두바이행 정기편도 2층 구조로 되어있는 A380-800 기재였다.


인천에서 두바이로 향하는 EK323편, 에미레이트 항공답게 A380-800으로 운항된다.
빼곡히 들어선 비즈니스석 모듈의 2층 풍경, 승무원이 돌아다니며 기내식 메뉴를 미리 물어본다.


 보통의 광동체 여객기에서도 비즈니스석은 전면부 일부를 구획하여 만드는 반면에 에미레이트 항공의 A380은 2층 전체를 퍼스트와 비즈니스 만으로 박아 넣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기내에 딱 들어서면 마치 전좌석이 비즈니스석으로만 이루어진 비행기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SeatGuru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1층 이코노미석은 약 400석, 2층은 거의 동일한 면적 안에 퍼스트 14석과 비즈니스 76석이 배치되어있다.


와, 이 넓은 공간이 다 내 거라니!
전면 모니터도 상당히 크다. 한국영화도 꽤 많은 편
창문 쪽으로는 보조 모니터가 한 개 더 있는데, 탈착식으로 되어있다. 그 옆으로는 미니 바다.
위 사진의 회색 파우치 안에는 불가리 기내 어메니티 세트가 들어있다. 물론 가지고 내려도 된다.
늘 비즈니스를 타는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았다. 표정이나 손의 모양이 다소 어색해 보이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이다.


 부자 항공사답게 좌석도 완전히 180도 눕혀지는 풀 플랫(Full-flat) 타입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사진상 좌석 오른쪽에 보이는 테이블 같이 생긴 부분은 매 열마다 좌우를 바꿔 등장하는데 뒷좌석 사람은 이 공간 하부로 발을 집어넣고 완전히 누울 수 있도록 되어있다. 동체의 상부층이라 상대적으로 벽체가 기울어져 생기는 좌석과의 틈에는 가방을 수납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때문에 상부 선반의 쓰임새는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기내식 서빙 후에는 이내 불이 꺼지고...
퍼스트에서나 해주는 줄 알았던 이불 깔아주기 서비스가 진행된다.


 화장실도 가보고, 라운지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 되었다. 이대로 잠들어버리기엔 좀 아까운 기분이었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출근했다가 바로 공항으로 온지라 온 몸 구석구석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승무원이 이불을 깔고 잘 준비를 해 주었다. 이런 호사는 몇 번이고 누려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복도 쪽 자리이긴 했지만 팔걸이가 가림막 역할을 해서 주변 방해받지 않고 여섯 시간가량 푹 잤다. 처음 접해보는 풀 플랫 좌석이 제법 편하고 기분 좋았다. 하지만 자리에 누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는 것과 어찌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좌석이 승급되어도 비행기에서 자는 건 여전히 고달프다. 혹시 퍼스트는 다르려나.


이륙하자마자 나온 저녁 식사, 오른쪽 양고기 전채요리가 아주 맛있었다.
메인으로 나온 치킨 커틀렛과 파스타는 그저 그런 편.
오히려 디저트류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상자에 담겨있는 건 고디바 초콜릿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다시 아침 식사가 나온다. 오믈렛과 죽 중에서 골랐는데 너무 짜서 선택을 후회했다.
어느새 창밖으로 보이는 두바이 시내, 이제 내려야 할 시간이다.


 먹는 것도 꽤 잘 먹었다. 잠자기 전후로 총 두 번의 기내식이 나왔다. 물론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해도 땅 위에서 먹는 음식에 맛에는 비할바가 못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음료와 디저트류가 풍부한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초콜릿 무스케이크가 맛있었는데 살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식기가 정리되고 이내 모니터에는 두바이의 새벽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A380에는 꼬리날개 수직익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착륙 장면을 즐길 수 있었다. 내리기 싫은데... 더 타도 괜찮은데... 하지만 야속한 승무원들은 연신 '굿바이'를 웃으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달콤했던 좌석 승급의 행운은 찰나의 순간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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