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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Mar 26. 2020

아뇨, 혼자입니다

대학로 - 2019.0730.1600


 한국에서부터 지구 정반대 브라질까지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미국을 경유하거나,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하거나, 중동을 경유하는 항로가 그것인데, 지난 2016년 유일한 직항 편이 폐지된 이후론 환승 편을 이용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그중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은 거리는 짧을지언정 ESTA를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유럽 주요 도시를 거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아부다비의 에티하드 항공, 도하의 카타르 항공, 또는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무난하다고 했다.


브라질로의 출장, 나의 비행 기록에 드디어 남미대륙이 등장했다!


 어느 날 회사 메일로 날아든 에미레이트 항공 티켓 한 장과 함께 브라질로의 출장이 갑작스럽게 확정되었다. 오고 가는데만 꼬박 사흘은 잡아야 하니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여비를 준비하는 것도 다른 출장 때보다 배로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가보는 남미 대륙이다. 요즘 들어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꾸만 브라질 치안에 대한 소식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근심을 더하게 했다. 그래도 이 모든 상황에도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건 순전히 가보지 못한 곳, 접해보지 못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첫 남미 대륙 방문을 '출장'으로 하게 되었다.


대학로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마른장마에 종일 덥고 습한 날씨가 반복되던 7월의 끝자락, 출국하는 그날따라 서있기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날씨의 서울이었다. 두바이를 경유하여 상파울루까지 가는 내 비행 편은 자정 무렵 인천에서 출발할 예정이었다. 프랑스에서의 짧은 휴가에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곧바로 월요일 출근을 했다가, 그날 저녁 회사에서 다시 공항으로 직행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아무리 체력에 자신이 있는 나였어도 이번 출장만큼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였을까. 물론 내가 아직은 좌석 클래스를 따져가며 탈 정도 위인이 아님에도 초청받은 이코노미 클래스 표에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비행, 순수 탑승시간만 25시간, 대기시간까지 합치면 총 30시간이 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부디 내가 선택한 자리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출발시간 한참 전임에도 북적이는 체크인 카운터, 어째 예감이 좋다?


 간발의 차로 버스 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30분이나 더 기다렸다가 겨우 공항에 왔다. 그래도 생각보단 일찍 도착했다. 아직 탑승까지는 4시간 가까이 남은 시각, 느린 걸음으로 에미레이트 항공의 체크인 카운터를 찾아갔다. 그런데 벌써부터 줄 서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좌석 승급'. 몇 년 전, 북경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버부킹으로 인한 좌석 승급을 받아본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에 의하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승급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1 높은 클래스의 표: 보통 여행사를 통해 구매하는 출장용 표들이 이에 해당한다.
 2 탑승률이 높은 인기 노선: 당초 초과 예약된 인원이 모두 출석해버리면 자리가 모자라게 된다.
 3 혼자 온 승객: 위 두 가지에 해당하더라도 동행이 있으면 여러 자리를 승급해야 하므로 순위에서 밀린다.


 그렇다. 지금 나는 1번과 3번 조건에 해당하며 방금 본 체크인 카운터의 북적이는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2번의 상황과도 근접해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체크인 순간, 창구 직원은 나에게 '혹시 동행이 있으신가요?'하고 반가운 질문을 물어왔다.


'아뇨, 혼자입니다!'


오오 비즈니스, 좌석 승급이다!


 나의 직감은 정확했다. 체크인 카운터의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 이코노미가 풀 부킹이라 승급을 해 드려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괜찮기는요... 당연히 너무 좋죠!'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신사답게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후후...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장거리 비즈니스석을 타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북경에서 돌아오는 비행기가 첫 비즈니스였는데 일단 단거리 노선이라 그런지 우등버스 정도의 좌석 느낌이었고 그마저도 비행시간이 짧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타는 두바이까지 비행은 9시간 30분짜리 야간비행이다. 너무 신나 어깨가 들썩거려 주체할 수가 없을 만큼 기뻤으나 신사다운 태도를 계속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후후후...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두바이에서 상파울루까지 가는 다음 티켓은 승급이 안되어 여전히 이코노미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우선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충분히 즐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탑승구로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신이 났지만 티 나지 않도록 조심...
비즈니스는 오른쪽으로, 복도 크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온 터라 식사를 하지 못했었다. 라운지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샤워실을 들러 몸단장까지 말끔하게 마쳤다. 이미 시간이 늦어 문이 닫힌 면세구역을 지나 두바이까지 가는 EK323편 탑승게이트로 향했다.


 항속거리를 고려할 때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동 항공 편들은 어디로든 환승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졌다. 아마 오늘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 편에도 전 세계로 향하는 휴가객들이 몰려있을 터다. 풀 부킹 비행 편이었던 만큼 게이트 멀리서부터 긴 줄이 보였다. 하지만 비즈니스 티켓은 별도의 게이트로 들어가면 된다. 한창 배낭여행 다닐 때만 해도 줄 서는데 이골이 날 정도였는데 그냥 휙 지나가버리니 이건 뭐 섭섭할 정도다. 그래도 티 안 나게 절제된 미소를 띠며 유유히 게이트를 지났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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