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비행 - 2019.0730.2400
두바이 국제공항을 허브로 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은 가장 부유한 항공사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스폰서십 문구로 Fly Emirates가 익숙할 터이고 나처럼 항덕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가장 큰 여객기인 A380을 최다 보유한 항공사로도 잘 알고 있으리라. 내가 탄 인천발 두바이행 정기편도 2층 구조로 되어있는 A380-800 기재였다.
보통의 광동체 여객기에서도 비즈니스석은 전면부 일부를 구획하여 만드는 반면에 에미레이트 항공의 A380은 2층 전체를 퍼스트와 비즈니스 만으로 박아 넣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기내에 딱 들어서면 마치 전좌석이 비즈니스석으로만 이루어진 비행기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SeatGuru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1층 이코노미석은 약 400석, 2층은 거의 동일한 면적 안에 퍼스트 14석과 비즈니스 76석이 배치되어있다.
부자 항공사답게 좌석도 완전히 180도 눕혀지는 풀 플랫(Full-flat) 타입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사진상 좌석 오른쪽에 보이는 테이블 같이 생긴 부분은 매 열마다 좌우를 바꿔 등장하는데 뒷좌석 사람은 이 공간 하부로 발을 집어넣고 완전히 누울 수 있도록 되어있다. 동체의 상부층이라 상대적으로 벽체가 기울어져 생기는 좌석과의 틈에는 가방을 수납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때문에 상부 선반의 쓰임새는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화장실도 가보고, 라운지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 되었다. 이대로 잠들어버리기엔 좀 아까운 기분이었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출근했다가 바로 공항으로 온지라 온 몸 구석구석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승무원이 이불을 깔고 잘 준비를 해 주었다. 이런 호사는 몇 번이고 누려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복도 쪽 자리이긴 했지만 팔걸이가 가림막 역할을 해서 주변 방해받지 않고 여섯 시간가량 푹 잤다. 처음 접해보는 풀 플랫 좌석이 제법 편하고 기분 좋았다. 하지만 자리에 누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는 것과 어찌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좌석이 승급되어도 비행기에서 자는 건 여전히 고달프다. 혹시 퍼스트는 다르려나.
먹는 것도 꽤 잘 먹었다. 잠자기 전후로 총 두 번의 기내식이 나왔다. 물론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해도 땅 위에서 먹는 음식에 맛에는 비할바가 못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음료와 디저트류가 풍부한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초콜릿 무스케이크가 맛있었는데 살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식기가 정리되고 이내 모니터에는 두바이의 새벽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A380에는 꼬리날개 수직익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착륙 장면을 즐길 수 있었다. 내리기 싫은데... 더 타도 괜찮은데... 하지만 야속한 승무원들은 연신 '굿바이'를 웃으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달콤했던 좌석 승급의 행운은 찰나의 순간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