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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Mar 26. 2020

쿠리치바의 고기도
모조리 먹어 치우다

쿠리치바 - 2019.0802.1400

 첫날 맛봤던 슈하스코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래서 쿠리치바에 들렀던 날 다시 한번 슈하스카리아를 찾았다. 쿠리치바에는 미리 알아둔 맛집도 없고 검색되는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럴 때 유용한 게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앱이다. 대개 한국어 웹에서 맛집이라고 올려놓는 레스토랑들은 생각보다 그저 그런 경우가 많았다. 대신 영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순위가 높은 집을 가면 실패하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입맛을 기준으로 한 주관적인 평가다.


 앞서 소개한 상파울루 포구지셩은 트립어드바이저 앱 상에서 상파울루 내 수천 개 슈하스카리아 중 2위로 랭크된 압도적인 맛집이었다. 쿠리치바에서도 트립어드바이저를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쿠리치바의 슈하스카리아 중 1위로 추천해주는 집을 찾았다. 거리는 조금 멀었지만 당장 우버 앱을 켜 포구 포르테(Fogo Forte)를 목적지로 넣었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갈빗집(?) 같은 범상치 않은 외관


웨이팅 공간이 따로 있는 걸 보니 맛집을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앞선 일정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끄는 바람에 이미 시간은 두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구글에 따르면 이 레스토랑의 점심 영업시간은 오후 세시까지라고 되어있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우버에서 내려 마주한 포구 포르테의 외관은 어딘가 다분히 한국적이었다. 넓은 대지에 옥외 주차장을 두고 단층으로 지어진 드라이비트 건물, OO가든 혹은 OO면옥이어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분위기였다. 과연 이 집은 맛이 있을까? 내가 제대로 찾아온 걸까?


퇴짜 맞을 걱정은 기우였다. 이미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여전히 왁자지껄한 만원 풍경!


샐러드바는 충실한 것 같으니 됐고,


이제는 익숙하니 일단 자리부터 잡고 앉았다. 시작해 볼까?


 혹시나 브레이크 타임이 임박해 눈치 보며 식사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장내는 만원이었다. 동네 결혼식이나 시골 잔치에 온 것처럼 귀가 따가울 정도의 말소리와 고기 냄새와 뒤섞여서 대단한 활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참기 힘들 정도로 배가 고팠다. 상파울루에서 한 번 먹어봤으니 주저할 것도 없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가방을 보자기로 씌우고 고기, 고기부터 찾았다. 가우초 양반, 이쪽이오!


기름기 좔좔 흐르는 등심도 좋고,


껍질 바삭하게 구워낸 머리 고기도 좋으니,


어서 내게 고기를 가져다주시오!


 확실히 쿠리치바가 상파울루보다 작은 도시라 그런 건지 훈훈한 시골 인심 같은 게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웨이터들이 잘라주는 고기 조각 또한 상파울루 보다 더 큼직하니 먹음직스러웠다.  맛도 좀 더 야생에 가까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달까. 이 집에는 상파울루 포구지셩에서 봤던 딱지 같은 개념이 없다. 그냥 일단 웨이터가 오면 먹을지, 말지 말해주면 된다. 웨이터들은 당신이 얼마나 배부른지는 전혀 관계없이 정말 끊임없이, 끝도 없이 고기를 들고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 먹을래?


부위는 모르겠다. 앙증맞은 모양새만큼이나 지방과 단백질의 조화가 환상적!


안심, 혀 끝에서 살살 녹는다.


인상 깊었던 고기인데, 소머리 국밥에 들어가는 머리 고기 같은걸 껍질 바삭하게 구워냈다. 묘한 중독성!


그래도 역시 내 입맛엔 등심, 등심이 최고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먹고, 또 먹었다. 그대들의 이름(부위)을 하나하나 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시오. 


 오로지 고기만 줄곧 먹어치우는 나에게 코미디언 배영만을 쏙 빼닮은 사장님께선 샐러드바를 가리키며 윙크를 날리셨다. 물론 평소엔 쌈도 잘 싸 먹고 가니쉬도 곁들이는 편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고기만 먹고 싶었다.


삐까냐(Picanha)에 다시 한번 도전, 전 보다 나은 맛이었다.


  상파울루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삐까냐(Picanha, 우둔살)에도 다시 한번 도전했다. 앞서 설명했듯 거대한 캐슈너트 모양으로 먹음직스럽게 꽂혀있는 모양새만큼은 만점짜리다. 맛은 지난번보다 괜찮았다. 지방이 많지는 않지만 육질이 쫄깃하고 고기 결이 살아있어서 치아에 탄력 있게 저항하는 식감이 아주 일품이었다. 다음에 한 번 더 먹는다면 그 진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식사 종료. 분하다 내가 고기를 남기다니...


초콜릿 무스와 에스프레소, 디저트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결국 접시에 받았던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미안한 생각에 퍽퍽한 살코기만 남기고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는데 그릇을 치워가시는 사장님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니 왜 이것밖에 먹질 못하냐며, 아직 시간은 많으니 더 먹어보라며 또 한 번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백기를 들었다.


 마지막 남은 디저트 배를 짜내어 다시 한번 황홀한 마무리를 노려보았다. 이 집은 고기만 유명한 게 아니라 디저트도 유명하다며 자신 있게 메뉴를 선보이시는 사장님이었다. '디저트 맨'이라고 전담하는 셰프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했다.


 크림 블뤠 만큼이나 내가 참 사랑하는 초콜릿 무스를 주문했다. 너무 느끼하지도, 또 너무 밍밍하지도 않은 적절한 점도와 당도가 그야말로 슈하스코 먹고 입에 남은 기름기를 싹 흡수해 정리해주는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샷을 식도에 흘려보내고 나서야 긴 식사가 끝이 났다. 참으로 멋진 한 끼였다.


엥... 다들 언제 간겨?


 어느덧 시간은 네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고기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들어올 때 내 주변으로 왁자지껄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었다. 그제야 구석에서 점심 식사를 급하게 하시는 사장님 내외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은 스마트폰 충전을 요청하는 나에게 얼마든지 더 있다가 가도 좋다며 한껏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두 도시에서의 맛 본 두 번의 슈하스코, 사실 이게 이번 브라질 출장기의 요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금 내가 기억하는 브라질의 추억은 사진도, 음악도, 냄새도 아닌 맛이기 때문이다. 한 입 가득 베어 물면 입천장이 벗겨질 것만 같았던 강렬한 소금의 맛과 혀를 델 것만 같이 줄줄 흘러내리던 뜨거운 육즙의 향연. 


나의 브라질은 그 한입 안에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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